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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Nov 18. 2022

담담하게 국화꽃을 올렸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하루, 그날따라 미세먼지 없이 청아한 기분에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출근길이었다. 얼마 전부터 고민 고민을 하다 구입한 새 옷도 입었고, 미팅마다 원하는 결과를 내서 오늘은 어디한 번 힘을 좀 내고 야근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결의를 다진 날이었다.


시간은 저녁 일곱 시쯤,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엄마다. 늘 그냥 심심하면 전화하던 엄마니까 안 받을까 하다가 이거까지 해결하고 다시 집중해야지 하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전화 건너편에는 코가 맹맹하고 발음도 이상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술 먹고 또 울었구나, 싶은 생각에 왜 전화했냐고 시큰둥하게 받았다. 엄마는 내 이름을 한 번 부르고는 계속 흐느끼더니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겨우 입을 뗐다.


미자이모가... 돌아가셨어


내 귀를 의심했다. 말이 안 되니까. 지난달까지 멀쩡하게 같이 술 먹으며 시시덕거리던 씩씩한 그 이모가 돌아가실 리가 없다.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정신 차리고 물어봤다.


뭐?


엄마가 그냥 술이 취한 거 길 바랐다. 그래서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이길 바랐다. 다시 한번 또렷하게 이모가 돌아가셨으니 일단 알고 있으라고 하고는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눈은 멍해졌다. 초점이 흐리고 귀에서는 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신을 다잡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전화를 받았는데 사실이냐고, 정말이냐고. 그게 말이 되냐고. 그토록 강하고 씩씩한 아빠마저 코를 훌쩍이며 그래, 맞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니...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어디냐고 지금 가겠다고 하니 아빠는 아직 장례식장을 예약하지 못했으니 일단 집에 있으라는 것이었다.


아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혹시 연락받았냐고 물어보니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내 입으로 말을 했다.


미자이모가... 돌아가셨대


남편도 어? 하며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내게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지금? 지금.. 그랬다고?


그렇다고 대답하고 일단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멍해진 정신을 겨우 붙잡고 상사에게 내일 황급히 휴가를 써야 될지 모르겠다는 말만 전달한 뒤,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초점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하철역을 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를 탔다. 어떻게 탄 건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창 밖을 쳐다보니 그때부터 조금씩 감정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에 있는 이모 이름을 찾고, 썸네일을 눌러 이모를 보고, 이모와 대화를 보고, 사진첩을 열어 얼마 전 잔치에서 만난 이모 사진을 봤다. 이모 목소리가 아직 내 귀에 있는데, 지금이라도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이년 저년 하면서도 조카들 중에 내가 제일 예쁘다고 입이 마르도록 얘기해줄 것 같은데. 이제 같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 카카오톡을 보내도 답장이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되기 시작했다.


너무, 정말 너무 먹먹해서 처음 한 두 방울의 눈물은 흐르지도 못하고 뚝뚝 떨어졌다. 그 이후로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집에 가는 50여분 시간 내내 눈물만 흘렸다. 아직도 말이 안 되는데, 이모가 내 곁에 없다는 게 여전히 실감이 안되는데 정말로 없다는 게, 너무 기분이 이상하고 싫었다.


집에 도착해 아빠의 호출을 기다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사망신고서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 확인할게 많으니 오늘은 그냥 집에서 자고 내일 오라고 했다. 도저히 그냥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소주잔 3개를 가져오더니, 이모에게 한 잔 올리자 했다.


지난번 잔치에서 이모에게 따라주지 못한 그 한 잔을 따르고 펑펑 울었다. 하도 울었더니 눈이 아파서 뜨고 있지 못하겠더라. 그렇게 정적은 흘렀고,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장례식장과 호실이었다. 아, 정말이네... 정말 이모가 없네.


아침이 되어 아이를 등원시키고 하룻밤을 보낼 짐을 싸서 이모에게 달려갔다. 이모의 이름 석자가 찍힌 호실을 찾아갔는데, 입구에 너무너무 예쁘게 찍은 이모의 모습이 보였다. 그토록 좋아하는 핑크색 한복을 입은 모습이 너무 고왔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하.... 말도 안 돼. 저렇게 예쁜 우리 이모를 어째서...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가니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우리 집 외가야 워낙 대가족이니 좀만 모여도 시끌시끌했다. 빈소를 들어가니 이모의 딸, 내가 친동생처럼 여기는 내 동생이 상복을 입고 있었다. 동생을 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냥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그렇게, 이모 사진 앞에 떨리는 손으로 국화꽃을 올렸다. 절을 하고, 목례를 하고, 다시 동생을 안았다. 언니 왔다고, 언니 왔으니까 이제 기대도 된다고. 언니가 계속 곁에 있을 거니까 씩씩하게 이모 가는 길 잘 보내드리자고. 동생은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이모가 돌아가시게 된 이야기를 듣고, 정말 현실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슬픔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렇게 거의 하루를 꼬박 울기만 했던 것 같다.


내 이모, 미자이모. 늘 씩씩하고 강하고 당당하지만 여린 내면을 가졌던 우리 이모. 당신이 그토록 몸이 아팠어도 가족들 걱정할까 숨기고 지냈던 그 세월을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렇게 집에 좀 놀러 오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못 간 것도 너무 미안했다. 친척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문득문득 근처에서 이모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울컥했다.


이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입관이 진행됐다. 서늘한 주검이 된 이모를 보니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만큼 아픔이 강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돌아가며 주물러도 주고 하라는데 차마 손이 닿지 않았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이모의 그 마지막 모습이, 얼굴이,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이모를 입관하고 이모가 좋아했던 핑크빛 꽃을 골라 살며시 놓았다. 꽃을 놓으며 마음속으로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다운 곳에 가서 행복하게 지내기를 빌었다.


그렇게 다음날 장지를 가서 이모를 정말 떠나보낼 시간이 됐다. 불과 한 달 전, 나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손주 육아에 지친 이모의 육아 스트레스를 주고받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랬던 나의 이모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왔다. 정말, 떠났구나. 이 세상에 함께 없구나. 아, 이모가 정말, 갔구나.


모든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와서도 한동안 먹먹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먹먹하다. 그래도 기특한 내 동생은 힘을 내어주고 있고, 앞으로 예전보다 훨씬 더 끈끈하게 지내자고 서로 다짐했다.


그리고 어제, 친한 지인의 자녀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모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1주일 만이다. 그렇게 오늘 아이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내가 감히 어찌 상상하겠는가. 상상도 못 할 그 슬픔을 겪어 내여 할 지인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아직 이모의 상실에 대한 먹먹함이 치유되지 않은 터라 그런가, 당황스럽거나 아픔보다는 비교적 담담했다. 아이의 장례까지 올해에만 총 5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되니 정말 세상이 덧없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큰 아픔을 오래 겪으면 나중에는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이 담담해지는가 보다.


아이가 장난감이 수북한 곳에서 실컷 마음껏 뛰놀고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며, 그렇게 나는 오늘 또 아이 사진 앞에 담담하게 국화꽃을 올렸다.


누군가 떠나보내는 경험, 살아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하고 행복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아픔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니 충분하게 아파하고 슬퍼하고 흘려주자. 살아있음에 항상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기로 하자. 소중한 내 주변 사람에게 충분하게 사랑을 주며, 하루하루 행복한 날로 기억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잘하자.


이모, 떠나간 그곳에서는 그 누구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시간만 보내길 바라.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 만나는 그날엔 미처 못한 소주 한 잔 꼭 하자.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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