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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Dec 14. 2023

요즘 생각

일과 삶

01. 이력서

팀원의 퇴사로 이력서 전쟁이 시작됐다. 대기업이라 그런가 올린 지 3일 됐는데 100개 가까이의 이력서가 밀려들어온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스타트업에서 볼 때는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맘에 들어서 골라냈었는데 어찌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회사인데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이유가 뭘까?


수많은 이력서와 마주하며 떠올린 것은 확실히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이력서는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 또한 메타인지가 없는 사람은 강점이라고 쓴 부분도 강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 인터뷰는 또 다른 얘기지만 이력서는 첫 관문이다. 정말 이 회사에, 이 팀에 오고 싶은 게 맞나 하는 의문이 심히 드는 요즘이다.


02. 건강

나는 일을 좀 크게 만드는 성향이다. 회사 동료의 말마따나 ‘건너뛰어도 되는 돌멩이를 굳이 뽑아내며 가는’ 사람이라 그런가 눈엣 가시를 뒤로하고 가기가 참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신사업 부서는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맡은 프러덕이 소위 유명한 녀석이 되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돈 잘 벌고 회사에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단순히 돈만 벌게 아니라 진짜 고객들이 찾고 또 찾아도 질리지 않는 곳이면 좋겠다. 내가 상상하는 고객이 오고 싶게 만들려면 일을 죽어라 해도 충분하지 않다. 때문에 건강은 어쩔 수 없이 후순위가 된다. 나는 분명 이직을 했는데 또! 많은 사람의 걱정을 받는다. 제발 좀 쉬면서 하라고 한다. 아니, 사업이 이지경인데 쉴틈이 있으면 안되지 않나?


03. 가족

아들은 아침마다 출근하는 엄마에게 인사해 주기 위해 질끈 감고 더 자고 싶은 욕구를 빠르게 포기한다. 엄마도 아침잠 일어나기 힘든데 인사를 안 해주면 하루 시작이 안 좋다나, 무조건 일어나서 억지로라도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해주고 들어간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으니 힘들어도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게 착하고 따뜻한 내 아들에게 학교 담임은 ADHD(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 검사를 받아보라 권한다. 것도 두 번이나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과 상의 끝에 검사를 받아 결과를 제출하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 휴가를 쓰고 함께 병원으로 왔다. 아들이 설령 해당 진단을 받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들의 사랑스러움이다. 아들은 여전히 예쁘고 따사로운 미소를 가진 귀여운 아이로, 언제나 사랑스럽게 성장할 것이다.


04. 취미

팀 동료가 물었다. 취미가 뭔가요? 예전에도 여러 번 고민해 봤지만 취미가 정말 없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일이 취미라는 것. 아, 이걸 슬퍼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그렇게 내린 결론으로 그럼 취미를 어떻게 역량으로 승화시킬지 고민을 한다. 취미를 전략적으로 일에 이용하기로 한다. 일이 취미인데, 이걸 또 기획하는 일로 만들고 앉았다. 나는 어쩌면 답 없는 사람 아닐까.


어린 시절의 취미는 뭐였나 떠올려봤다. 별다른 게 떠오르질 않았다. 분명 활동적이고 복작복작한 걸 좋아하는 누가 봐도 파워E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모든 것에 무반응인 사람으로 바뀌었을까. 일이 취미라서 이지경이 된 건 아닐까, 회사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 같지만 회사를 떠나기는 싫고. 역시 취미는 질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주제다.


05. 술

매일 맥주를 마시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에 한 캔, 주말에는 무제한. 술이 몸에 해롭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지 같은 마음 따위 잊은 지 오래. 하루 마무리를 술로 하지 않았을 때, 건강하고 기분 좋게 일어나는 상쾌한 느낌을 망치는 게 너무 싫다. 그래서 술을 먹고 자고 피곤하고 먹먹한 뇌가 바깥공기를 마시며 치유될 때 좀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이것이 알코올중독인가!


정말 많은 검색을 했다. ‘알콜의존증’, ‘술 끊기’, ‘절주 하는 방법‘ 등등. 절주는 허상 같은 거고 끊을 거면 확실히 끊고 아닐 거면 끊어야 한다는 강박에 스트레스받느니 그냥 마시기로 했다. 그러다 하나 떠오른 게 있다. 상쾌하게 일어나서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래, 휴식이 필요하구나.


06. 휴식

아직 잡지 못한 휴식의 날. 혼자시간이 필요한 때가 되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에 원하는 노래 잔잔하게 깔고 책 보고 바다보고 또 자고 맛있는 거 먹고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다 오는 것. 뇌를 좀 쉬게 하는 시간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다.


쉴틈이 없는 신사업, 가족에 대한 걱정, 취미를 일로 만들어버리는 성향. 숨 막히는 삶이지만 그래도 미주알고주알 회사얘기 들어주는 다정한 남편, 햇살보다 따순 사랑을 주는 아들 덕분에 아직은 견딜만하다. 하지만 이러다 번아웃과 우울증이 대뜸 불쑥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휴식을 하고 나면 나아질지 두고 보기로 한다.


병원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요즘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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