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하 Jan 31. 2023

오늘도 링크드인을 한다.

이직 1년 차, 회고

이직 후 3개월 회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때 다짐했던 것이 있었다. 딱 1년간 닥치고 해서 밥 값 하는 사람이 되는 것, 회사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과는 어떨까?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겸손하게 생각해 봐도 ‘매우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내 글을 봐온 독자분들은 알겠지만 스스로 이토록 ‘나는 밥 값 했다’라고 나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잘했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내가 나를 정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조금은 건방지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량적인 수치가 보여줬고, 진행한 프로젝트의 성공률이 높았다고 자부한다. 나는 제품팀이다. 즉, 서비스를 직접 설계해서 만들어내는 팀에 소속되어 있는데 제품을 통해 회사의 매출을 높여준데 큰 기여를 했다면 그만한 밥값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약국의 제품팀 소속이라 치자. 약국에는 수많은 약들이 있다. 약사님의 뇌가 제아무리 비상하다 해도 모든 약의 위치를 기억하기는 어렵다. 자주 사용되는 약은 가운데 배치해서 빠르게 빼낼 수 있겠지만, 이름도 생소하고 언제 받았는지도 모르는 약제들은 사실 ‘이쯤인 것 같은데’하고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럴 때는 제품팀이 도울 수 있다. 약국 위치코드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 뒀다가 처방전 바코드를 찍는 순간 A열 3번째 칸 왼쪽에 배치된 것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럼 일의 효율은 올라갈 것이고 아르바이트생도 정확한 약품명을 들고 오는 손님에게 빠르게 탐색해서 일손을 도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물론 예시일 뿐이다. 실제로 이렇게 되는지는 잘 모른다.)


제품팀은 이런 운영효율뿐 아니라, 사업적으로 필요하지만 아직 갖춰지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회사에서도 신사업을 엄청 넓게 펼치는 중인데(개인적으로 걱정이 크다) 신사업이니 당연히 기존의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한 규격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요즘 대부분 플랫폼이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버티컬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때문에 특정한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데 있어 입점 시 분야에 따라 수수료율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거나, 특정 셀러 타입에 따라 예외적인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다.


물론 수기로 일부 처리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량으로 이런 처리들이 일어나야 한다면 결국 시스템화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사업을 확장해서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데 제품팀이 가마니처럼 있을 수 있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많은 PO들이 ‘비즈니스 임팩트’를 따지고 드느라 돈 버는 것 아니면 굳이 플래닝에 추가해서 내 소중한 리소스를 할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과랑 연결되어 그렇다는데 일 년이 흐른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조금 달리했다. 리소스가 가능한 수준까지는 필요한 운영성 업무들과 제품단 설계가 필요한 부분을 섞어가며 일을 했다. 조금 큰 규모의 설계건이 오더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꼭 일 년, 많은 일을 해냈고 앞으로도 많은 일이 주어져있다. 내가 배포한 제품들 덕분에 사업부는 많은 매출을 챙길 수 있었고, 덕분에 나름대로 인정받으며 일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하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갈증이 생겼다. 이전 회사에서 여기로 넘어올 때는 ‘나의 것’을 갖고 싶어서, 더 큰 성장에 목마름에 떠나왔는데 어찌 그 많은 나의 것이 생겨도 성장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일까. 이제는 성장이라는 기분을 느끼기에 내가 너무 노련해진 것일까.


수많은 고민 끝에 내려진 결론은 절대 노련해졌기 때문에 즉, 내가 시니어라서 성장한다는 기분이 멈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나는 어떤 스타트업씬의 성장 스토리에 내 일도 아닌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열정 같은 게 있고, 매일매일 창업에 대한 꿈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참 오랜만에 드는 기분인데 이런 기분이 들었던 시기를 돌이켜보니 대기업을 다닐 때였다. 당시 나는 모바일 기획팀에 소속되어 회사에서 모바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을 해내야 되는 정말 바쁜 팀이었다. 야근수당으로만 몇 십만 원씩 받아갈 수밖에 없는 회사의 코어팀 중 하나였다.


그렇게 바빴는데, 창업을 꿈꿨다. 그렇게 일 년 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작게라도 쇼핑몰을 차렸었더랬다. 그렇게 창업은 망했고 한 회사를 들어가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일을 하다 보니 딴생각이 안 들었다. 정말 내 회사처럼 일했다. 내가 주가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불철주야 일을 했다. 그래서 시니어가 되면 ‘일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딴생각을 하지 않는 거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와서 또, 대기업 그 시절처럼 ‘딴생각’이 드는 걸까?


결론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됐다. 첫째, 포부가 큰 리더가 없다. 많은 리더가 자신의 경험을 맹신하고 더 나은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다. 대표도 그렇다. 둘째, 회사는 자신들에 대한 믿음이 없다. 업계 탑티어임에도 우리보다 낮은 티어의 경쟁사를 보며 따라가기 바쁘다. 자신 감 없이 매번 쫓아가는 기분이 스스로를 더 하찮게 만든다. 대표도 그런 것 같다.


두 개의 이유 마지막에 ‘대표도 그렇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스타트업은 그만큼 대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대표가 스스로에 대한 신뢰나 더 좋게 하려는 의지나 열정이나 포부가 없다면 구성원이 그 의지가 생길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터무니없고 바보 같은 생각이라도 자신의 올곧은 방향이 있는 대표가 더 따라가기 좋다는 거다. 예전 회사 대표님이 그랬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너무 이상해 보이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돈 벌기보다 ‘진짜, 진정한 고객지향 마인드’였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내가 나서서 돈 버는 일을 찾게 되고 내 회사도 아닌데 내 회사처럼 일을 하게 된 거다. 그 확실한 하나의 키워드가 소위 말하는 북극성 지표가 됐고 수많은 배들이 고객만족을 위해 항해했다.


처음에는 내가 대표와 가깝지 않아서 더 이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대표와 가깝지 않기에 생기는 이 문제는 내 상위 리더의 문제일 수 있다. 이전 회사도 대표님과 나는 일면식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의 이사님은 항상 그 방향을 솔직하게 공유해 주었고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런 공유가 단절되고, 그저 그들만의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싸워봐야 구성원은 그 방향을 알기 어렵다. 문서로 정리되어 오긴 하지만, 터무니없다.


나는 이전 회사에서 리더에 있었다. 그렇기에 구성원이 되고 나서도 리더처럼 사고하려 노력했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기존의 경험을 살려 가능한 선명하게 청사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되지 않았다는 것은, 회사와 구성원의 소통은 ’확실하게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단절을 느끼지 못하는 C레벨이 답답해서 내 직속 리더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런 반기를 계속 들어야 할지 솔직히 의문이다.


그렇게 답답한 갈증을 느낄 때마다 이전회사의 그리움과 동시에 링크드인을 찾는다. 내 아이폰의 스크린타임에 링크드인이 3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말 다했다.


링크드인을 찾는 이유는 새로운 시야를 배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정말 나와 맞는 핏의 좋은 기회가 오면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기도 해서 종일 알짱거리게 된다. 나와 핏이 맞는 회사가 어딘가에는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직 일 년 차, 이번에도 회고라기에는 하소연에 가깝지만 이제 창업을 했거나 배움의 의지가 있는 대표, 리더라면 꼭 인지해주면 좋겠다. 회사를 이끄는 사람들의 사고와 마인드를 구성원은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을, 구성원이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단절되어 있다면 절대 구성원은 내 회사처럼 일하지 않는다. 이 간단한 진리를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스널 브랜딩, 꼭 필요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