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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an 17. 2024

끝없는 백로그를 관리하는 방법

중요한 것에 집중하세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자리에 앉았다. 지치고 피곤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루종일 정신없이 정리하고 또 정리를 했는데 도대체 이놈의 일은 왜 끝날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아니 그보다 일을 하긴 한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지?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돌이켜보니 새해가 되고 단 한 번도 정시 퇴근을 못했다.


처음에는 조직개편이 되고 적응하느라 이렇게 바쁜가 보다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구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주말이 됐다.


주말은 정말 정말 오래 잤다. 기침이 멈추고 처음으로 맞이한 주말이라 그런지 몸이 쳐지고 도무지 기운이 나질 않았다. 자고 자고 또 자고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그렇게 주말에 아들과 하루를 보냈고 아들과 말싸움 한바탕하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아, 내가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리고 말았구나.


그렇게 다시 월요일을 맞이했고, 출근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바람에 숨쉴틈 없이 오전을 흘려보낸 뒤 점심시간이 됐다. 아침에 출근하며 사들고 온 샌드위치를 대충 씹어가며 오후 미팅을 준비했다. 오후 내리 미팅을 하면서 오늘도 꼼짝없이 야근하겠구나 생각하는 마음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꽉 막힌 머리를 겨우 붙잡고 일을 하다가 아,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섯 시가 되자마자 짐을 챙겼다. 해야 할 일을 ‘남겨두고’ 퇴근을 해보기로 했다. 퇴근하면서도 남겨둔 일이 계속 생각났다. 아 맞다 그걸 했어야 했는데, 그건 끝내고 나올걸 등.. 혹시나 누군가 나의 부재로 일 진척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퇴근하고도 슬랙을 계속 들여다본다.


아니다 잊자. 평소 잘 안 보던 유튜브를 켰다. 스낵콘텐츠나 소비하면서 머리 좀 식혀야지 했는데, 평소 좋아했던 Open AI의 샘알트만이 추천하는 강의라는 타이틀에 홀려 별생각 없이 보게 됐다. 별다른 생각 없이 틀게 된 강의가 지금까지 꽉 막혀있던 생각을 한 방에 날려줬다. 그간 뭐가 문제였는지 명확해졌다.


강의 내용 전반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지금 내 상황의 문제를 알려준 한 문장을 소개한다.


리차드해밍 You and Your research


- 올바른 문제

- 적당한 때

- 제대로 된 방법


이 3가지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동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누적해서 해왔고 그로 인해 피로도를 느끼고 있었던 것. 별생각 없이 틀었던 강의를 보고 무엇이 그 문제의 뿌리였는지 떠올랐다. 바로 PM의 숙명 중 하나인 ‘백로그’ 때문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백로그 관리의 늪에서 살아왔었다. 쌓이는 속도와 해결하는 속도의 갭은 점점 커졌고, 결국 시간을 무한정 때려 부어 겨우겨우 위태롭게 서비스를 운영했었다.


그러다 지난 스타트업에서 그 상황을 끝내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됐다. 그것은 비즈니스의 목표에 집중하는 것, 그 유명한 비즈니스 임팩트!


지난 회사는 전반적으로 비즈니스의 ‘목표‘에 집중하는 문화를 가졌고 제 아무리 중요하다고 전달된 백로그라도 우리가 지금 가야 할 단기, 중기, 장기 목표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질끈 눈감을 줄 알았다. 그것을 대부분이 용인했다. 쌓이기만 하는 백로그의 무덤에서 허덕이지 않고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여 임팩트 있게 끝내는 것이 백로그 늪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회사는 대부분의 회사처럼 너도나도 이슈라며 말을 꺼내기만 급급했고, 지난 회사처럼 ‘목표 중심’의 문화가 잡혀있지도 않거니와 거절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로그 무덤 속을 뛰쳐나와 건강한 피톤치드가 흐르는 숲으로 가야만 했다. 그 방법이 희미했던 내게 리처드 해밍 교수는 그 해법을 알려줬다.


1. 올바른 문제

정말 문제가 맞는지 판별하는 단계. 대부분의 백로그는 사업부 또는 운영팀을 통해 적재된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을 다 쏟아낼 것이다. 가끔은 아니 이 사람은 티켓 만들러 회사 왔나 싶은 사람이 발견될 정도로 수많은 백로그가 별도의 정렬 없이 쌓이고 또 쌓인다.


그렇게 쌓인 백로그는 방치될 뿐이고 치명적인 장애가 터지거나 회사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건드리지 않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직접 자리로 와서 불편함을 설명해 주는 경우, 직접 당사자로부터 설명까지 들었으니 해결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해결하고 있노라면 또 다른 누군가 문제라며 전혀 다른 유형의 다른 백로그를 들고 온다. 그렇게 차곡차곡 친절한(?) 백로그 접수를 계속해서 받게 된다면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PM이라면 이 시점에 접수받은 백로그의 중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해야 한다. 지금 이들이 정성스레 가져온 백로그들은 진짜 중요한 문제가 맞는지 묻고 또 되물어야 한다. 아무리 되물어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 백로그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확률이 높다. 무덤에서 나오고 싶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라.


이거 정말 꼭 해결해야 될 문제인가?


2. 적당한 때

안타깝게도 그럼에도 많은 백로그가 남게 될 거다. 스스로 정말 문제라고 판별되는 것만 추렸는데 그다지 양적인 변화가 없을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뭐다? 바로 ‘우선순위’


회사의 자원은 신기할 정도로 항상 부족하다. 3명을 리드할 때도 20명을 리드할 때도 늘 부족한 게 일정이고 인력이다. 그렇기에 적절한 우선순위를 판별해서 어느 시점에 이 문제를 해결할지, 이 문제는 얼마나 긴급한 문제인지를 판별해야 한다. 시급도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고객’에게 치명적인 경험일 때를 일컫지만, 회사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경우(컴플라이언스, 평판 이슈 등)의 긴급도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크든 작든 ‘중요한 문제’를 ‘가장 적절한 시기’에 진행해야 하고, 무작정 쉬워 보이거나 빠르게 해결 가능한 것을 우선적으로 쳐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러다간 정말 중요한 것을 계속해서 미루게 될 거고, 그렇게 우리 비즈니스는 망조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니 문제 해결 전에 꼭 체크해 보라.


이거 진짜 ‘지금’ 해결해야 될 문제인가?


3. 제대로 된 방법

문제를 식별했다면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종결되어야 해결이다. 그전까지 해결됐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함께 일했던 일부 동료는 개발자에게 그 문제를 넘겼다고 그것을 ‘해결했다’고 표현했다. 그건 해결이 아닌 방치다. 개발자가 원인을 찾고 함께 고민해서 문제를 끝내는 것. 그것이 해결이다.


더불어 해결방법은 ‘제대로 된 방법’이 되어야 한다. 깊게 고민하기 싫어 대충 땜빵해 두면 나중에 분명 더 큰 쓰나미를 몰고 온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제품도 과거의 잘못된 해결방법 때문에 덕지덕지 누더기 같은 레거시를 생산했고 커머스 코어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하나부터 다시 차곡차곡 뼈대를 교체하며 운영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많은 동료들이 우리 서비스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올바른 문제를 식별했고 적절한 때를 잘 판별했다고 해도 이처럼 문제 해결 방법이 잘못되면 의미가 없다. 단적인 예시로 이유 모를 주문 데이터 하나가 골치 아프다고 원인도 찾지 않고 DML(Data Manipulation Language) 처리로 땜빵해서는 안된다. 근본적으로 왜 이 문제가 발생했는지 근거를 찾고 실마리를 따라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물론 가끔은 그렇게 근본을 해결했어도 원하지 않게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을 거다. 그러나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쓴 과정은 경험으로 차곡차곡 적립될 것이고 향후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 갈 때 조금 더 빠르고 정확하고 기존보다 큰 성공을 만들어낼 것이라 장담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전 꼭 스스로에게 묻자.


이 문제해결 방법은 과연 옳은 방법인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목표에 방해가 되는 문제를 식별하고 적절한 때에 문제에 몰입해서 임팩트 있게 해결해 내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 같지만 백로그가 허덕이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돌이켜보라. 조금도 이렇게 해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목표와 전혀 동떨어진 문제에 쓸데없이 집착하고 지엽적으로 문제를 바라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명확한 방법을 알고도 난 여전히 향기로운 피톤치드의 숲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고백하건대 이건 내 식별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행동으로 옮기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매일 다짐한다. 오늘은 꼭 이 무덤을 탈출하고 말 것이다!


백로그 무덤에 허덕이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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