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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Jul 21. 2020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일하는 미나리


  일요일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와 어둡고 눅눅한 공기가 두 어깨를 무겁게 하고, 아스팔트 위로 차오른 빗물이 발등까지 적시는 아침 출근길.


  물안개가 도서관 건물과 인근 수풀에 자욱하게 낀- 오늘처럼 비가 세차게 내리는 일요일 아침에도. 도서관은 문을 열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도서관의 직원들은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바지런한 이들이 비가 오는 주말 아침에도 도서관을 찾는다. 일요일 아침 여덟 시 반, 아직 문조차 열지 않은 도서관 앞 처마에 옹기종기 선 이들을 보면 문득 '왜 당신들은 도서관을 찾는지' 묻고 싶어 지곤 한다.

  이제 우리는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책들을 언제 어디서건 읽을 수 있다. 그뿐인가.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음성, 사진, 영상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정보를 언제 어디서건 찾을 수 있다.

  '도서관 Library'은 라틴어 '책 Liber'을 어원으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그렇다면 책이 귀하지 않게 된 요즈음. 도서관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일까.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때때로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어쩌면, 내가 사서가 아니라서 계속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도는지도 모른다. 이용자로서가 아닌 도서관은 내게 낯선 곳이어서.



Photo by Alfons Morales on Unsplash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도서관은 휴관과 개관을 반복했다. 지지부진한 나날들이었다. 사태는 좋아질 듯 좋아지지 않았고, 더 나빠질 수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준비하고 있던 모든 행사와 프로그램이 취소되었다.


  연말부터 연초까지 빼곡히 작성한 계획안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따위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모조리 휴지 쪼가리가 되었다. 연초에 예의 '그 문장'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연기합니다> 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축소 운영합니다> 등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문장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취소합니다> ,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무기한 휴관합니다>로 강화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연간 계획이 휴지 쪼가리가 되자, 그 뒷수습을 위한 업무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야심 차게 준비했던 계획들이 그만큼 큰 파도가 되어 우리를 덮쳤다. 연기.. 연기.. 그러나 결국 취소. 파토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쳤다. 몰아치는 서류 업무는 아무래도 좋았다. 거래처 담당자에게, 또는 프로그램 강사에게 행사 취소를 알리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중에는 이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졌다며 눈물로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상황이 좋아지면 꼭 다시 뵙자고 꼭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어떤 밤에는 마음이 너무 무거워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소된 업무 뒷감당뿐만은 아니었다. 어찌나 많은 민원이 들이치는지.. 도서관에 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도서관이 이렇게 이용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이용자로서 이용했던 도서관과 직원으로 바라보는 도서관은 정말로, 정말로 다른 곳이었다. 이것도 어쩌면, 내가 사서가 아니라서 몰랐던 것일까.



Photo by Artur Matosyan on Unsplash

  


  미술을 전공했다. 정확하게는 그중에서 공예, 더 정확히는 목공예. 대학에 재학하는 4년 내내 가구를 만들었다. 가구를 만드는 공예 작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코엑스, 그리고 독일의 쾰른의 아트페어에서 가구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 수많은 벽에 부딪히며 창작의 길을 접었다. 나에게는 그만한 재주가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탓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전시를 기획했다. 정확히는 전시와 관련된 행정과 실무자로서 일했다. 예술의전당, 서울시립미술관, 강릉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곳에서 전시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처음 도서관에 올 때는 막연하게, 미술관이나 도서관이나 복합문화공간이 아닌가, 그림을 전시하느냐 책을 전시하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요즈음에야,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이름 아래 미술관도 북큐레이션을 하고, 도서관도 미술 전시를 하지 않나. 근본은 같은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글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놀라울 정도로 미술관과 도서관은 다른 공간이다.


  이곳저곳 흘러다닌 탓에 나는 언제나 이방인 같았으나, 이 곳에서는 한층 더 이방인이 되었다. 인문계 사이의 예체능, 사서가 아닌 도서관 직원.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지켜본 도서관의 나날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가끔 울고 싶은 날도 있지만.


  강 변에 위치한 도서관에서는 미나리가 자란다. 한여름 미나리처럼 억세게 자라는 것이 목표인데, 현실은 겨울 미나리처럼 아무래도 속이 차질 않는다. 이 곳에서 빈 속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가 올 해의 가장 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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