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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Jan 19. 2021

트렌드 도서관 2021

트렌드는 매년 달라지는 데 사람 사는 건 늘 똑같아


  내가 일하는 도서관은 조금 특이한 구조로 자료실과 자료실 사이에 구분이 없다. 자료실의 구분이 없는 만큼 대출과 반납, 그리고 그 외 잡다한 문의들은 모두 1층의 '중앙데스크'에서 이루어지는데, 일단 이 자리에 앉으면 태풍에 등 떠밀리듯이 시간이 잘 간다. 바빠서.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용자와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물에 빠져 숨 죽은 미나리처럼 늘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를 사람의 넋을 빼놓는다며 '파리지옥'이라고 부르는데, 그래도 이 자리에는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 모든 자료실의 이용자를 다 응대하다 보니 이용자들이 자주 빌려가는 책으로 요즈음 트렌드라던지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용자들이 많이 빌려가는 책들은 대출반납처리도 잦고, 책을 찾는 문의도 자주 들어오다 보니 아무래도 눈에 익는다. 나는 주로 제목보다 표지의 그림을 기억하는 편인데, 본래 내 전공이 미술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나는 사서는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사서가 아닌데도, 도서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씩 도서관 1층 데스크에 앉아 대출반납 업무를 한다. 그 이유를 나는 도대체 알 수 없으나 왜인지 이 곳의 사서들은 공평한 것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모든 도서관의 직원들은 데스크 업무를 나눠서 한다. 대출반납 업무는 크게 어렵지 않으나- 내 전공이나 업무와는 결이 많이 다르고,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할 시간이 일주일 중 하루가 줄어들어 아주 성가시다. 재밌는 점은 데스크 업무만 진행하는 담당자가 또 따로 있다는 점인데, 이 때문에 다른 직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는 것 같다. 뭐 어쨌거나 나는 그보다도 대체 왜 이 벽창호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똑같이 나누는 것에 관심이 많은지가 더 궁금하지만. (적다 보니 알 것 같다. 벽창호들이라 그런 거군.) 때때로 이 사람들 전생에 어디서 뭐 떼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누는 걸 참 좋아한다. 책을 분류대로 나누는 일을 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 같은 건가.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 그들은 MBTI도 참 좋아한다!)


  어쨌거나 요즘 우리 도서관의 '트렌드'는 부동산과 주식 등 투자 관련이다. 요새 가장 기 좋은 은 거의 분류기호 300번인데, 부동산과 주식 관련 도서가 300번 사회과학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우리 도서관 사서들이 머리를 싸매는 골칫거리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투자니 하는 제목의 300번대 책들이 자꾸자꾸 쌓이고 있는데, 이들은 연도에 따라 또는 시리즈에 따라 끝없이 새끼까지 치고 있. 누누이 얘기하지만 나는 사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처럼 여기는 중이지만- 그러면서도  사람 사는 건 어디건 언제건 다 똑같다,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5,000년 전 단군 신화가 터를 잡으면서 시작했는데 2021년을 사는 후손들도 터를 잡는 데에 그렇게 열심이다. 5,000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현상을 트렌드라고 봐야 하나? 이제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사도 짓지 않건만, 여전히 땅은 부의 상징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땅에 목을 맨다. 이런 이유로 300번대 서가가 차고 넘칠 정도가 되자 우리 도서관 사서들은 300번대 책을 이곳저곳에 나누어 배치하고 있다. 실용서만 늘어나는 것에 난색을 표하는 모습을 보며, 같은 문화예술 업계 종사자로서 어렴풋이 그들 고민의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참 알 수 없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도서관의 벽창호들은 장서의 종류와 배가에 있어서도 조화롭고 균등한 배분을 원하는 듯하는 뉘앙스를 여러 번 어필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서들이 나(또는 우리 팀)를 보며 버거워하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 팀은 전원이 비(非) 사서로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만큼 예민하고 본능적으로 흐름을 읽어내는 일에 익숙하다. 사서들이 매일매일 통계와 데이터를 뽑아낼 때, 우리는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흐름을 좇는다. 종종 나는 사업 근거자료 요청에 '그런 게 필요한가요? 이건 아주 멋진데요!'라는 시그널을 보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사서들의 눈은 초점을 잃고 주변 어디께를 배회하기도 한다. 아마 잘은 몰라도 그들 역시 나(또는 우리 팀)를 많이 참고 있으리라. 그렇지만 그들은 분배와 조화의 수호자 같은 이들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조화롭게 지내려고 하는 것 같다. 가끔씩 내가 싫어하는 방식의 생각(너 원래 예술하던 애지? 예술하는 애는 원래 그렇지, 같은)을 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어떤 부분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사서가 아니니까 편하게 말할 수 있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종종 내가 이 곳의 이방인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서로에게 공감하기 어렵고, 종종 서로를 참아내야 한다. 언제나 서로에게 한 발짝씩 떨어져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인간관계가 어디 있으랴. 그리고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600번대(예술), 300번대(부동산) 도서를 신청한다.


  도서관에는 0번대부터 900번대까지, 내용부터 주제까지 전부 다른 책들이 모여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서관이 아니다. 이 곳이 '도서관'이라서 우리가 함께 한다. 모두 다르지만 모든 책에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전부 다르지만 각자의 이유로 함께 있다. 다른 우리가 조화롭게 함께 있으니 뭐라도 시너지가 있겠지. 어쩌면 그런 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의 재미는 있는 것 같다. 그들도 나를 재미있어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ps. 흐름과 함께 흘러가면 (또는 포기하면) 편해질 거다. (그러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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