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커피
난 사실 커피 맛을 잘 모른다. 그럼에도 매일 빠짐없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커피를 맛으로 즐긴다.'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즐긴다.'에 가깝다. 애연가들이 틈틈이 담배를 피우며 아이디어를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누군가와 눈 맞추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듯. 나는 커피를 마시며 내 삶의 구석구석을 채우고 비워나간다.
집에 홀로 있을 땐 주로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 하루에 해내야 하는 집안 일을 마치고 커피를 마신다. 찌는 듯한 더위가 아니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를 즐긴다. 일거리가 잔뜩 쌓여있어 허우적거릴 때도 컴퓨터 옆에 커피가 자리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리만 내어주고, 마시지 않은 날도 많다. 그저 '네가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이다. 이렇게 홀로 즐기는 커피는 한 템포 쉬어갈 때, 마음의 평온이 필요할 때 찾게 된다.
함께하는 커피는 조금 다르다. 쉼표가 느낌표로 변신한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쉼 없이 입 밖으로 무언가를 쏟고나면 수많은 느낌표가 자리한다. 맛과 향은 덤이다. 이곳에서도 커피는 그저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커진다.
그녀와 함께하는 커피는 진한 맛에 가깝다. 동동 떠다니던 생각들이 묵직하게 자리를 꽤차기 때문이다. 커피는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상대방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할 땐 커피맛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커피가 둘 사이의 다리가 아닌 음식으로서 자리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한 커피의 맛은 기억 속에 자리를 내어주질 못한다. 그녀석에게 내어줄 틈이 없다. 무슨 메뉴를 택하는 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커피면 된다.
우리에게 커피란, 큰 의미 없는 그냥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