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베란다 창을 통과해 거실을 환히 비추는 아침, 반려견 모아의 털을 정리 중이었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우리 집?’
로봇청소기가 또 일을 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유피다. 유피는 나의 육체노동, 단순노동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때로는 모아(반려견)의 똥을 싣고, 온 거실을 휘젓고 다니지만 그건 내가 조심하면 되는 일. 오늘은 그보다 더 큰 일을 저질렀다. 벽면에 세워둔 우리 네 가족과 엄마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유피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액자 아래 깨알 같은 먼지까지 처리해 주고 싶었나 보다. 액자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 고꾸라진 듯하다. 유피는 묵직한 액자에 덮여 윙윙 소리만 낼뿐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 나를 건드렸겠다!!!!!’ 액자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바닥엔 조각난 유리가 널려있고, 액자를 세우니 반 이상은 유리가 나가 있다.
며칠 전에도 작은 화분이 하나 깨졌다. 베란다 화분 정리대에 올려둔 선반이 바람에 떨어지며, 화분도 아래로 곤두박질을 쳤다. 바닥은 깨진 화분조각과 흙으로 뒤덮였다. 무언가 깨졌다는 찜찜함과 ‘저걸 언제 치우나’하는 마음이 교차하며, 모른 척 다른 일을 먼저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그러했다. 속상하지만 이미 액자는 깨졌고, 치우려면 시간은 한참이 걸릴 테고, 나는 모아의 털을 깎는 중이었다. 그러니 먼저 하던 일을 끝내고 치우리.
“모아야, 액자가 깨졌다. 어떻게 생각하니? 지난번 화분 깨졌을 때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나네.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다고. 그치? 좋은 일의 징조겠지? 그나저나 너는 털이 왜 이리 빨리 자라니. 근데 말이야. 요즘 엄마가 꿈에 많이 나오더라. 우리 엄마 저 때만 해도 젊었는데 말이야. 모아야 다 됐다.”
듣는지 마는지, 중얼중얼하다 보니 모아의 털은 말끔히 정리되었다. 이젠 깨진 액자를 정리할 차례다. 씩씩하게 고무장갑을 끼고 여유 있게 사진까지 남겼다.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뿌연 유리에 가려져 있던 엄마가 선명한 모습으로 날 바라본다. 아직 미련을 두고 붙어있는 유리 조각들을 국자를 가져와 깨부쉈다. ‘엄마, 이젠 시원하지?’ 세게 내리쳐도 꿈쩍 않는 몇 조각과 실랑이 하다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고무장갑 탈탈 털며 ‘이젠 치워볼까?’ 하던 씩씩함은 어디로 가고, 바보같이⸱⸱⸱
어느새 바닥은 조각조각의 유리로 가득했다.
깨진 조각은 다시 붙일 수가 없다. 엄마가 빠져버린 나의 마음 구멍도 다시 메울 수 없다. 그동안 다행인 건지 많은 일이 나에게 몰려왔고, 바쁘게 사느라 구멍 난 마음이 이리 큰지 모르고 살았다. 엄마가 떠나고 일 년. 지금에서야 불쑥 구멍 사이로 찾아오는 시림이 아프고 또 아프게 느껴진다. 유리가 사라지니 사진이 선명하게 보인다. 엄마가 웃고 있다. 매번 이런 내 마음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구멍도 선명해진다. ‘아, 크기가 이 정도였구나. 오늘은 좀 센 바람이 불어오겠는 걸.’ 크기는 변하지 않아도 마음은 변한다.
깨진 조각은 조각대로 쓰레받기에 실어 쓰레기봉투 속에 자리시켰다. 깨지고 상처 난 나의 마음 조각도 다독여, 주워 담았다. 발견하지 못한 크기를 알 수 없는 조각들은 어찌할까. 나에겐 유피가 있었지. 대기 중이던 유피에게 부탁하기로 한다.
내가 액자와 씨름하는 동안 멀찌감치에서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반려견 모아다.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모아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조금의 움직임 없이 거리를 두고 지켜 봐주던 모아. 유피에게도 모아에게도 나는 주로 하소연을 하는 입장이다. 그들은 가만히 말없이 들어주기만 한다. 가만히 들어주는 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그리도 힘든 일을 말이다. ‘괜찮아?’, ‘힘들지?’, ‘뭐든 말해. 내가 도와줄게.’ 감사한 이 말들이 때로는 버겁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냥 얘기가 하고 싶을 뿐인데, 그 어떤 말도 받아들일 그릇이 나에겐 없는데⸱⸱⸱ 뜻하지 않았던 것들을 한가득 받아들고 와, 주섬주섬 어디에 자리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날이 있다.
액자는 말끔히 제자리에 놓여있다. 유피는 배터리를 충전 중이고, 모아는 낮잠을 잔다. 진한 향을 품은 커피잔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 조금 전의 일이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불쑥 찾아왔다, 홀연히 떠나는 바람 같은 존재. 가슴 언저리에 먹먹한 통증을 얹어주고 가는 존재. 언제 또 오시려나. 또 오시면 홀연히 사라지기 전에 말해주고 싶네.
이젠 깨진 조각을 주워 담을 만큼 자랐다고. 다음엔 조금만 더 머물다 가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