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해 Jul 01. 2022

어른이 되기 위한 용기

이미지출처 : pixabay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가 찾아왔다. 경제적으로도 마음도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크리스마스 파티나 선물을 기대하는 건,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일이라는 걸 어린아이는 알고 있었다. 풍채가 좋고 걸걸한 여자 산타는, 캐럴이 거리를 물들일 때쯤이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잘 있었냐?”는 다정하지 않은 말투, 툭 건네는 마음과 선물에도 기분 좋은 날이 되었다. 아이는 기대가 상처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날엔 깨닫지 못했다. 무심한 말투에 담긴 따스한 마음을. 그저, 나도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 아이라는 것에 어깨가 펴졌던 것 같다.

엄마의 지인이었던 산타는 몇 해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산타의 목소리는 엄마를 향해, ‘누구냐~?’를 건넬 뿐이었다. 마음을 곳곳에 나눠주느라, 자신을 보살필 마음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일까. 내가 받은 마음은 어찌 전할까.     


끔찍하리만큼 무서운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덮혀진 무언가를 들춰 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이들, 손잡아 주는 이들, 기꺼이 뒤를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     

 

어른이 되었다. 물리적인 나이의 어른 말이다. 덜 자란 나를 부여잡고 이리 부딪히고 저리 구르며, 내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고, 미래의 나를 스케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어디에서든 나의 ‘인생 그림책이’라 소개하는 <미스 럼피우스>는, 요즘 나에게 ‘너의 미래는 이럴 거야’라고 말을 건넨다. 스스로 주문을 걸고, 주문을 향해 나아간다.

책을 처음 마주했던 날, 럼피우스가 뿌린 씨앗들로 언덕 위에 루핀꽃이 가득한 장면에 마음이 설렜다. ‘나도, 나도 되고 싶다. 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냈다. 언제부터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머무르게 된다. 백발이 된 럼피우스가 루핀 부인이 되어, 동네 아이들에게 도란도란 이야기해주는 장면이다. 어린 날의 럼피우스(앨리스)는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냈다. 루핀 부인의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도 저마다의 꿈을 꿀 테다. 건강히 자라서 멋진 어른이 될 것만 같다.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그곳에 자리한다.   



    , 뉴스 기사를 통해 아그네스 할머니를 알게 되었다.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마을에 농부로 살며, 마지막 날까지 예술가로서의 삶을 놓지 않았다. 수천 명의 마을 주민들을 기쁘게 해 줄  있는 재능을 마음껏 펼치셨던 분이다. 럼피우스가 루핀꽃으로  마을을 물들였다면, 아그네스 할머니는  마을을 자신의 그림으로 물들였다.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나아가 타인을 향한 마음까지,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저는 예술가예요. 그냥 즐기고, 사람들을 돕고 싶을 뿐이에요. 내적 창의력을 활용할 때 나이는 결국 숫자에 불과합니다. “     


럼피우스, 아그네스. 닮고 싶은 두 여인을 한 곳에 자리시켜본다. 내가 그리는 어른의 모습이다. 나에서 조금 더 나아가 우리, 함께의 가치를 더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펼치고, 글을 쓰며 사람을 이어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의 작은 용기로 시작된 일들이다. 얼굴조차 모르던 이들도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며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를 향해 내민 손을 잡는다. 그림책을 마주하는 아이도 어른도 눈빛은 언제나 반짝인다. 마치 그 안에 보물이 담겨있는 듯 네모난 세상 속으로 풍덩 마음을 던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만나고 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림책 속에서만 존재했던 세상을 그림책 밖으로 꺼내보려 한다. 과자선물세트에 어깨가 한껏 펴졌던 어린아이는, 이제 누군가의 어깨가 되어 줄 만큼 자랐다. 양쪽 어깨를 펴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중이다. 나의 산타에게 보답하는 일이자, 꿈꾸는 모습과 가까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어떠한 지위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바꾸고자 하는 마음과 용기 하나면 충분하다.   

   

뉴스 한 면을 따스하게 물들일 수 있는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용기 내어 한 발짝 나아가 본다.








*미스 럼피우스 | 글/그림 바버러 쿠니 | 옮김 우미경 | 시공주니어 | 2017.01.10. | 원제 Miss rumphiu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