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잠이 들었다. 낮동안 고단했는지 별다른 뒤척임도 없이 조그만 등을 들쑥거리며 잠의 세상으로 갔다. 그의 기상과 동시에 '지호 엄마'로 살았던 나의 하루는 그의 취침과 동시에 끝이 나고 본연의 나, 원래의 나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창밖의 사위는 어두운 지 오래지만, 나의 하루는 이제야 동이 트는 셈이다.
육아를 시작한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배 속에 아기를 품고 열 달을 기다렸는데, 아기를 세상 밖으로 내보낸 지도 어느덧 열 달이 흘렀다. 하루 종일 누워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던 아기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씹고 뜯고 맛보며 슈마허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기어 다니는 작은 꼬마가 되었다. 육아가 힘들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건만, 실제로 나의 일상이 되어보니 예상보다 더한 고됨에 뭔가 속은 기분도 들었다. 나보다 앞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이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경외심마저 들었다.
처음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기를 돌보았을 때는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잠시도 혼자 누워있지 않으려는 아기를 안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집안을 시계추처럼 오가는가 하면, 아기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아기를 배 위에 올려놓고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앉아있기도 했다. 제 때에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사치에 허황된 말이었고, 겨우 틈새시간을 찾아 미역국에 밥 한 숟갈 말아 넣고 먹으려 할 때면 '앙~!' 우는 아기의 소리에 밥은 내팽개치고 허겁지겁 달려가기 일쑤였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식탁 위에 외롭게 놓인 퉁퉁 불은 미역국밥을 보고 고단했을 아내의 하루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임신했을 때는 하루 종일 행복한 상상만 했다. 육아 서적을 읽으며 전문가 못지않게 훌륭히 내 아이를 키워내리라 다짐하였다. 아기와 웃으며 책을 읽고 눈을 맞추며 산책을 하고 함께 누워 정서적 교감을 하다 잠이 드는 하루. 얼마나 아름답고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아니, 알았다면 이 세계에 입장하지도 않았을까?
하지만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 아기의 얼굴을 보라. 이 험난하고 광활한 세상에 오직 엄마 아빠만 믿고 태어난 아기. 내가 이 곳에 왜 존재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 눈 앞에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 그저 즐거운 아기. 앞으로 무수한 행복과 좌절을 맛보며 매섭고도 달콤한 세상을 견뎌내야 할 아기. 이 아기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힘들다고 우울해만 할게 아니라 이 과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기가 잠들고 엄마가 잠자기 전 내게 주어진 달콤한 두 시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아기가 크면 들려주고 싶었다. 엄마는 책을 읽었노라고, 글을 썼노라고. 다름 아닌 너를 위해 그렇게 했노라고.
언제부턴가 삶이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는 또 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아기를 목숨보다 사랑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부지런하고 본받고픈 엄마가 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는 것.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꼬박 300일을 넘긴 초보 인간(?)과 초보 엄마의 이야기를 시나브로 그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