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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지 Aug 08. 2020

비우고 버리고 정리하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상의 작은 행동, 정리

 시작은 아이를 갖고부터였다. 내 아이가 자라날 집이 쾌적하길 바랐다. 물건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있고 굴러다니는 먼지가 없이 건강한 환경이길 소망했다. 매일 아침 청소시간표를 짜고 오늘은 어떤 일을 할지 구상했다. 하루는 창틀의 먼지 닦기, 하루는 옷방 정리하기, 하루는 베란다 비우기…. 잔뜩 불러온 배를 안고서 고된 일을 자처하고 있으니 남편 눈에는 내가 안쓰럽게 보였나 보다. 하지만 정작 내가 느낀 것은 힘듦이 아닌 개운함이었다.     


 원래 깔끔한 성격은 아니었다. 힘을 가득 주고 지퍼를 끌어당겨야 닫히는 내 손가방만 봐도 그렇다. 가방이나 서랍, 바구니만 있으면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 넣듯 온갖 잡동사니와 영수증을 쑤셔 박아놓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학창시절 내 방 청소는 엄마의 몫이었고, 대학에 들어가 자취를 시작한 원룸에는 좁은 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들어찼다. 오죽하면 전등을 손보러 오신 주인아저씨가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아이고, 창틀 좀 닦고 살지….”     




 임신을 하고 내 속에 새로운 생명을 품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달라졌다.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픈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런 소망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정리와 청소가 나의 힐링 타임이 되었다. 복잡했던 것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고, 선반이 터질 듯이 쌓여있던 짐들이 사라지고 휑덩그레 비어있는 광경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정리의 기본은 비우기다. 물건을 비우고 버리는 이 과정에서 놀랍게도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책장을 정리하며 지난 겨울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소설책을 보고 다시금 가슴이 울렁이기도 하고, 몇 년 전 관심을 가졌던 재테크 주제에 더 관심이 없음을 깨닫기도 한다. 물건들을 선택하고 버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현재 무엇을 좋아하는지, 원하는 것이나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옷 또한 마찬가지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수많은 옷 중 이제 나에게 어울리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현재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비우고 비우다 보면 내게 남은 물건은 몇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더없이 소중해진다. 하나하나 볼 때마다 가슴이 반응하고 어서 사용하고 싶어진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불안하고 예민한 날의 연속이었다. 밤중에 뒤척이며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늘 잠이 부족하기 일쑤고, 십 년간 몸담았던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온종일 집에만 있으려니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 감정의 화살들은 내 곁에 있는 남편에게 날아가곤 했다.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다. 잔뜩 날이 설 때면 옷장을 정리했다. 반듯하게 옷을 개어 서랍 속에 넣어놓으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수납장을 열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모두 버리거나 나눔하고 남은 물건들을 예쁘게 세워두면 내 기분도 날아갈 것 같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나를 다스리고 바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오늘도 아기를 재우고 어질러져 있는 바구니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필요 없는 것들은 버리고, 사용하는 것들은 가지런히. 물건을 비우고 정리하는 일들이지만 정작 비워지는 것은 나의 잡념이고, 정리되는 것은 나의 복잡한 마음이었다. 결국,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일상의 작은 행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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