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서 십구 년을 살다 도시에 올라온 소녀에겐 모든 것이 생경했다. 대학에서 만난 도시의 친구들은 소녀와는 다른 세련미를 풍겼다. 난생처음 가 본 프랜차이즈 피자집에서 무엇을 시켜야 하는지 몰라 메뉴판만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모르는 단어 투성이었지만 촌스러움을 들킬까 태연한 척 앉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급하게 산 옷들은 색깔이며 사이즈가 제각기 따로 놀았다. 도시의 삶에 적응하는 건 내가 이고 올라온 시골의 내음들을 하나씩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친구들의 옷은 참 예뻤다. 똑같은 티셔츠도 갓 물감을 입힌 듯 선명했다. 청바지에 수놓아진 알 수 없는 영어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 무늬도 없는 나의 청바지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친구들의 곱게 다듬은 머리가 바람에 살랑거릴 때마다 타고난 나의 곱슬머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다지 신경 쓸 일도 아니었는데, 무신경한 척하려고 애를 쓸수록 자꾸만 다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뼛속까지 시골 소녀였던 나는 도시의 대학생이 되기 위해 또 다른 나를 만들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세련된 커리어우먼이 되고자 무던히도 애썼다. 그렇게 만들어낸 페르소나가 몇이나 될까. 내 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남의 눈에 비칠 나의 모습만을 열심히 그려보며 전전긍긍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과 화장품으로 나를 치장했다. 화려한 옷을 입고 거울 속에 비친 내게 물었다.
‘이게 진짜 네 모습이 맞니?’
해마다 이맘때쯤 학창 시절 하굣길에 내리쬐던 뜨거운 태양과 길가에 피어 있던 자줏빛 채송화를 기억한다. 시골집 텃밭에서는 풋고추가 매큼한 냄새를 풍기며 자라나고, 거실에는 목이 고장 나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선풍기가 있었다.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아 안테나를 한껏 치켜세우며 들었던 라디오에서는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옛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자연의 내음을 안은 것들, 오래되었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 말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면 어느 곳을 만졌느냐에 따라 굵다란 기둥이기도 했다가 길쭉한 뱀이 되기도 하고 커다란 무가 되기도 한다. 남들이 겪는 나도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제각각일텐데 왜 그리 아등바등하며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애썼을까. 내 모습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왜 스스로 불편함을 자초하며 살았을까.
시간이 흘러 내 곁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기가 생겼다. 가족 간의 결속력이 강해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갈수록 내 안의 나도 단단해짐을 느낀다. 화장을 지우고 머쓱해하는 나를 보고 ‘그래도 예쁘다’며 웃어주는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나를 채우고, 감지 않은 머리에 대충 모자만 얹어 쓰고 나가도 내 품에서 나를 보며 웃는 아기의 미소가 나를 당당하게 한다. 서로가 어떤 모습이어도 끝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포장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 불안했던 내 마음속 빈 항아리를 채워주는 존재들이 허투루 나이만 먹어가던 나를 성숙하게 했다.
이제 불편하고 비싼 옷을 입기보다는 내 몸에 편안한 린넨 고무줄 바지를 입는다. 몸 어느 한 곳 조이는 곳이 없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준다. 화학약품으로 억지로 펴지 않고 자연스럽게 곱슬거리는 긴 머리는 하나로 묶었다. 보기에는 좀 촌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나는 이게 편하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허비했던 시간들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가슴 설레는 음악을 듣는 시간으로 가꿔나간다. 그래, 이게 나다. 시골의 따스함과 편안함을 품고 태어나 살아온 나의 모습을 이제야 진실하게 마주한다. 해질 무렵 라디오에선 여느 때처럼 유행하는 가요들이 흘러나온다. 스피커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아이유가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예쁜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한다.
‘오 왜 그럴까.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 그림보다 빼곡히 채운 팔레트, 일기, 잠들었던 시간들. I lik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