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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ese Dec 23. 2023

몰락하는 인간은 왜 위대한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초판 표지라 한다.




역사교사였던 아빠는 교사 시절 제법 큰 규모의 논술 카페를 운영하였는데, 그 곳에서의 닉네임을 '니케'라 지어 활동하셨다. 왜 니케냐 여쭈니 승리의 여신 니케이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니체이기 때문에 중의적인 표현으로 니케라 지었다고 말씀하셨더랬다. 왜 니체를 좋아하시냐 되물었더니 아빠가 생각하기에 가장 인간을 사랑했던 철학자기 때문이란다. 


그 즈음 삼수하던 임고생이었던 나는 설령 교육청이 나를 어여삐 여기지 않더라도(!) 그저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니체를 찾아 읽기 시작했었더랬다. 아빠 말씀대로 니체는 인간을 사랑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그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했고 얼마나 살뜰히 사랑했는지를 서설에서부터 역설했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놓인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무서워서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의 사랑스러움은 그가 과도이며 몰락이라는 데 있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그는 저쪽을 향해 건너가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황문수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문예출판사


니체는 인간이 '완전하지 않은' 과도이기에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인간은 '다리'로서의 과정, 그 안에서 겪는 수많은 '몰락'과 실패, 그로 인한 성장을 겪는다. 높은 이상인 자신의 신을 사랑하고 징벌하며 거듭되는 멸망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인식하고자 하는 삶을 선택하지만,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정을 위해 '머리'를 오로지 내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 아기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삶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졌다. 깡총이는 정말 사랑스럽고, 나의 많은 손을 필요로 하는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다보니 한정된 24시간 안에서 아기와, 그리고 출산 이전 및 이후의 '나'라는 인간과도 함께 해야 하는 과제가 조금 버거웠다. 뭐랄까, 아기와 함께 하는 삶에 내가 욕망하는 나를 우겨넣는 기분이었달까. 덕분에 한동안 조금 혼란하고 방황했다. 


육아하는 나와 세상을 살아온 내가 적절히 병존하는 일은 참 어렵다. 아기는 이앓이를 시작하고 수면 패턴이 계속 바뀌고 있고, 이 와중에 남편 없는 집에서 육아에 쏟아야 하는 절대 시간이 늘었다. 책을 읽는 것도 원고를 쓰는 것도 누구 말마따나 '진-득'하니 하기가 어렵다. 엉덩이 붙이고 있을 짬이 잘 나지 않는다. 


마음이 복작해서, 그래서 인간인 나에게 잘하고 있다 말해줄 니체를 다시 들었다. 고맙게도 니체는 나아가는 과정에 있기에 사랑스러운 존재라 얘기하며 나를 다독인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마음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라면서. 내 스스로 나를 경멸하며 흔들리는 것 또한 내가 '최후의 인간'이 아닌, '인식'하는 사람이기에 그런 것이라 축복해준다. 


그렇게, 지금 겪는 이 몰락은 나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할 것이다. 그러니 심정을 가다듬고 조금씩 길을 찾아가보자. 분명 함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아기도 나도 사랑하느라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내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방도가 있을 것이며, 곧 마주하게 될 것이리라. 내가 겪는 이 소용돌이는 지극히도 과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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