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 빈티지
내 이름으로 첫 등기를 친 때는 2012년으로 기억한다. 첫 집은 1992년식 다세대주택, G빌라의 (1층 같다 우길만 한) 반지층 호실이었다.
9호선 전철역도 가깝고 부모님 댁도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대출을 잔뜩 끼고 매수한 곳이었다. 전형적인 90년대 벽돌조 빌라로, 2동 8세대 규모의 다세대 주택. 주차는 4대만 가능했다.
당시 나는 재건축 사업성이나 용도지역, 용적률, 비례율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일천했고, 그저 ‘집이 꽤나 낡았으니 언젠가는 새 빌라로 재건축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6년을 살았다.
물론 그 6년간 많은 추억이 깃들었지만...
암튼, 투자적 기회비용 측면에서 돌이켜보면 ‘그 집에서 왜 그렇게 오래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뭔가를 기대하고 오래 살았다기 보다는, '아무 생각도 없었으니 오래 살게 되었다'가 맞을 것이다.
이게 뭐 잘못된 건 아니지만 부를 증식시키는 것도 목표로 삼은 사람이라면...... 유죄!
G빌라에 대해 정리해 보자면
- 지나고 알게된 G빌라의 용도지역은 도시 지역에서 가장 흔한 제2종일반주거지역
- 다세대주택 대지의 크기는 총 130평 정도, 8세대 대지지분은 동일했다. 세대당 17평 정도으로 선방했었다.
- 돈벌레가 참 많이 나왔는데...레지스탕스 돈벌레였던 듯.
나는 동네산책을 좋아한다. 그 때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관절이 튼튼하게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즐겨할 것이다.
보통은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 안면 튼 고양이들과 눈인사도 하고, 용왕산에 올라 러닝 트랙을 10바퀴 정도 돌거나, 거꾸리(Inversion Table)를 하면서 하루간 척추에 쏠렸던 압력을 분산시키거나, 용왕정에 걸터앉아 소나무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야경을 보곤 했다.
암튼, 그날은 새 산책로도 뚫을 겸, 용왕산이 아닌 큰 길(공항대로) 건너 염창동으로 산책을 나서게 되었다. '역시 용왕산만한 곳이 없네...'라고 생각하며 걷던 중 심상치 않은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와....이건...머임...ㄷㅂ 오래됐네....’
9호선 개통으로 새로이 지어진 주변 신식 건물들 사이에 볼드 굴림체 폰트로 ‘가동’, ‘나동’이라고 표기된 나즈막한 D연립은 주변과의 대비 때문에 더 도드라져 보였다. 테헤란로를 걷다가 600살 먹은 가문비나무라도 보면 이런 기분일까?
가만보니 나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연립을 지나칠 때면 굳이 고개를 들러 쳐다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동행이 있는 사람들은 건물을 함께 보며 뭐라 이야기를 하며 지나갔다. 수군수근이수근.. 쑥덕쑥덕쑥개떡..
아마도 '진짜 오래됐다....', '여기 뭐야?', '헉, 대박, 소오름~' , '귀신 나올 것 같아' 정도의 이야기를 했겠거니 예상한다.
암튼 뭔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니, 산책을 황급히 중단하고 집에 돌아와 D연립에 대한 본격적인 서-칭을 시작했다.
- D연립이 1981년에 준공된 건물이라는 것
- 재건축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는 것
- 연립이 위치한 땅이 준주거지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지구단위계획구역이라던가 한강중점경관관리 어쩌고 저쩌고 이런 것도 보게 되었다.
서칭을 하면서 용적률이나 대지지분의 개념에 대해서도 덩달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그랬다. 알면 알수록 길 건너 염창동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은 자주 드는 게 아니다.
또 마음 먹으면 해야 하자나. 그르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