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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빵 Sep 11. 2023

나대다. 다시 재건축 진도 뺍시다.

재건축 시동을 다시 걸어봅시다.


1편 '발견하다'부터 보기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D연립에는 2008년에 설립된 일반 재건축 조합이 있었다. [정비사업조합 사무실]이라는 아크릴 명패가 달린 컨테이너 박스도 연립 한 구석에 있었다. 

십 년 가까이 사업이 멈춰 있었기에 당연히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어떤 아주머니가 유모차며 잡동사니 같은 것을 꺼내고 넣는 모습을 목격한 바 누군가의 개인 창고 정도로 쓰이는 듯했다. 재건축과 관련된 동정은 없었다. 잠잠해도 너무 잠잠했다. 


저 컨테이너만 치워도 주차 2대는 더 하겠네


우연인지 필연인지 d연립의 정비 사업이 답보에 빠져 있던 2018년 즈음에는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주택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 규정이 대거 발표되었다.


지금은 부동산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을 테지만, 당시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뭔가...  [하이포아염소산]이나 [건축무한육면각체] 같은 어감의 생소한 개념이었다.


2018년의 부동산 시장은 절절 끓고 있었다. 아파트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오르고 정부와 언론은 그 원인을 신규 주택 공급의 부족이라 판단한 듯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 모션이라도 필요한 때였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공급량이란 것은 대규모 택지지구의 공급량에 비하면 민망할 정도로 소소하다. 덤프트럭에 에스프레소 잔으로 모래 푸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가로구역을 유지한 채 시행되는 정비사업이다. 즉, 블록단위의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이 그 대상이 된다. 고오급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하는 것과는 의도가 다르다. 보다 서민적인 뉘앙스다.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거추장스러운 규제책 등을 숭덩숭덩 없어주었다. 약간 만사 프리패스 느낌이랄까?


간략히,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하면.... 어떤 혜택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의 면제 대상이 되고,

공공성 요건을 충족하면 분양가 상한제도 면제가 가능하고, 

임대주택 공급에 따라 용적률도 영혼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2023년 현재는 조합원 지위 양도에 관한 제한이 생겼지만 당시엔 별도의 제한도 없었다. 사업 중 어느 시점에라도 집을 다른 이에게 팔면 구매자가 조합원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단순하고 쉬운가.

D연립 역시 가로주택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혜택 많은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놔두고 기존의 (무혜택) 일반 재건축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이유가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D연립은 준주거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준주거지역이란 또 무엇이냐. 

주거를 포함한 기타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이다. 주거지역 중에 가장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지역이다. 말 그대로 건물을 높고 빽빽하게 지을 수 있는 지역이다. 주거지역 중에서는 제1·2종전용주거지역 <제1종일반주거지역 <제2종일반주거지역 <제3종일반주거지역 <준주거지역으로 갈수록 밀도 높은 건축이 가능하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용도지역별 용적률 비교




서울의 상업지역


분홍색으로 표시된 것이 서울의 상업지역이다. CBD(도심), GBD(강남), YBD(여의도)가 단연 눈에 띈다. 강남은 도로변을 위주로 지정되어 있다. 가장 효용이 좋은 땅으로 당연히 귀하고 좋다. 





서울의 준공업지역



보라색 빗금으로 표현된 서울의 준공업지역이다. 구로구, 금천구, 강서구, 영등포구 등 서울 서남권에 주로 분포하며, 창동과 성수동에서도 분포한다. 역시나 귀하다. 굴뚝이 사라진 서울엔 빽빽한 빌딩과 지식산업센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성수동의 그 힙한 분위기? 준공업지역이었기에 가능한 무드다. 





일반주거지역


서울 지역 토지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1/2/3종 일반주거지역, 그중에서도 2종일반주거지역의 비율이 가장 높다. 





서울의 준주거지역


보이는가? 연두색 빗금이 쳐진 지역이 준주거지역이다. 전철역이나 주요 간선도로의 결절지에 분포한다.





2018년 상반기가 끓는 물 같았다면, 하반기는 끓는 기름 같았다. 서울시는 9.13 / 9.21 긴급 부동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서울지역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해  준주거지역 용적률을 100% 추가 상향해 주기로 한다.



다만,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큰 두 가지는 아래와 같았다.

1. 2022.3월까지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것

2. 용적률 상향 분의 절반은 임대주택 공급에 사용할 것


D연립에 적용해 보자.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준주거지역의 시너지를 누릴 수 있는 기회. 다만 타임 리미트는 2022. 3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간단했다. 우선은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준주거지역 용적률 상향에 대해 소유주들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것. 나도 생소하게 접한 개념들인데 주민들이 이런 소식을 알고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알아도 이렇게 잠잠한 거였다면 그건 더 큰 문제고. 

2022년 3월이라는 용적률 상향 타임 리밋은 주민들을 응집하는데 오히려 득이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처음으로 한 일은 네이버에 카페를 만든 것이다. 당연히 아는 이웃이 없으니 초대할 회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공부해 둔 D연립 관련 정보를 하나씩 올리면서, 연립 입구 현관에 카페 가입을 유도하는 안내문을 붙이기로 했다. 아래는 카페를 만들고 처음으로 쓴 글이다. 말 그대로 연립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글이다.  보다시피 2018.10. 28에 작성된 것으로 나오는데, 내가 D연립으로 이사한 날이 2018.10.20이니 약 1주 걸렸다. 성미가 느긋한 편은 아닌 것 같다.






카페에 D연립 관련 정보를 하나씩 업로드하면서, 연립 입구 현관에 카페 가입을 유도하는 안내문도 붙였다.






A4용지 두장을 이어 붙여 만든 자보.



A4용지 두 장을 붙여 A3크기로 만든 자보를 붙이고 뿌듯한 마음으로 출근했는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돌아와 보니 연립 현관에 붙여놓았던 안내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바람에 날아갔나, 고양이가 물어갔나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가동과 나동 두 곳 현관 모두 안내문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닌자 고양이보다는 나의 움직임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누군가 있다는 추정이 합리적이었다


연락처까지 적어두었는데 전화를 하면 될 것이지...

용적률, 대지면적 등 D연립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적어둔 것인데도 이것을 떼버렸다는 것은 [안내문을 제거한 자]가 주민들이 어느 수준 이상의 정보를 아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아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혹시 임차 거주인이 떼었을 수도 있다. 당연히 세입자 입장에서는 이게 싫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D연립에 대한 단순한 정보라지만, 이게 의미하는 메시지는 '재건축합시다'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세입자라 하여도 (D연립의 보증금이나 월세가 매우 저렴하긴 하지만) 애착을 가질만한 컨디션이 절대 아니기도 했고, 이런 컨디션의 연립은 언제든지 재건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명시하고 계약·거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 나 역시 풍부한 주택 임차 경험이 있는 바, 굳이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안내문 제거' 같은 행동을 하진 않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내문을 출력해 세대별로 편지함에 꽂아 두었다. 저녁에 보니 모든 봉투가 사라져 있었다.  

세대주에게 당도한 봉투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 누군가가 일괄적으로 제거했다는 '촉'이 왔다. 게다가 안내문을 제거한 그 인간 역시 내가 의도치 않게 심기를 후벼놨으니  꽤나 예민한 상태일 터였다. 내용을 보고 나서는 다른 집에 꽂힌 나머지 안내문들도 다 치워버렸을 테지.



전 세대 등기를 열람해 소유주가 거주 중인 호실에 우편물을 꽂아두었다.


그래도 내 오기에 불을 댕겨줬으니 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당신 사람 잘못 봤다. 나도 돌아이라면 돌아이다.

한 번에 6~7통씩만, 하루에 3번, 새벽에 한 번, 퇴근하고 한 번, 밤에 한 번, 이렇게 전 세대에 3~4사이클 정도를 우편함에 꽂았다. 도합 100통이 넘었을 것이다. 내용도 더 공들여 수정하고 안내문도 한차례 더 붙였다.


다이소에서 산 120장 들이 편지봉투가 거의 떨어져 가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 표시와 함께 전화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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