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ristie Mar 25. 2025

EP05. 잔소리, 그 애매함에 대하여

클언니의 일상다반사

잔소리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그렇다. 성격이 안 좋은지 어릴 땐 자존심만 세고(이건 나중에 알고 보니 자존감이 낮은 거였다.) 남의 충고를 더 싫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에 상담해 오는 지인들이 많아서 그럴 때마다 나름의 조언을 해왔던 것도 뭔가 "내로남불"같은 이야기다. 암튼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나는 가급적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하는 편이다. 관계에서의 전반적인 내 행동의 기조는 "내가 싫은 건 남한테도 하지 말자."인데 솔직히 말하면 이건 상대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에 더 가깝다. '나도 안 할 테니까 나한테도 하지 마.' 이런 심리다.


잔소리의 정의를 찾아봤다. 


[ 잔소리 ]  

1.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그 말.  

2.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또는 그런 말.  


굉장히 주관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잔소리하는 입장에선  분명히 상대를 생각하고 잘되길 바라는 염려의 맘으로 하는 게 보통인데,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쓸데없는 말인 것이다. 이런 식이면 조언이나 충고도 잔소리가 되고 말고는 결국, 듣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있다.


내가 잔소리에 회의적인 입장이 된 계기가 있다. 물론 난 조언을 한 것이다. 응원해 줄 수 없는 연애를 반복하는 친구가 있는데 항상 그 고민과 힘듦을 하소연해 왔다. 잘 듣고 이해해보려 하고, 그녀의 입장도 되어보고 나름의 최선의 방법을 제안해 본다. 그리고 반복된다. 또 반복된다. 어느 순간 '아! 나 뭐 하는 거야. 얘는 왜 이러는 거야.' 상처받았다. 나의 진심은 그녀의 흔들림 없는(?) 태도에 의해 비자발적 잔소리가 되어버렸다. 그때부터다. 조언이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 이후론 가급적 듣기만 한다. 때론 듣고 싶은 소리를 해준다. 그걸 원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연애할 때도 비슷하다. 다른 잔소리는 별로 없지만 건강에 관한 식사를 챙기거나 잠을 잘 자는 것에 대한 잔소리는 가끔 하게 된다. 그게 한 두세 번 반복돼도 상대의 수용이나 변화가 없다고 느껴지면 이젠 이렇게 생각해 버린다. '그래, 네가 내 아들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배고프면 먹겠지. 아파도 니 몸이지..' 이렇게. 

최근에 이런 얘기를 아는 커플과 함께한 자리에서 한 적이 있다. 그때 여자친구는 내 말에 동감했지만 남자친구가 한 말이 재밌었다. "에이.. 그래도 계속해줘야지~ 그게 사랑이지~. 남자는 말을 안 들어도 잔소리해주는 걸 좋아하는데.." 역시, 난 연애의 고수는 못 되나 보다.


난 삶을 대하는 태도 중에 회의적인 걸 제일 싫어한다. 매사에 무조건적인 수용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회의적"이란 단어는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의심이다. 받아들여도 되나 하는 검증을 위한 의심이 아닌, 틀렸을 거야 라는 걸 검증하려는 의심의 느낌이다. 잔소리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도 관계에서 점점 회의적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말 안 들을 거야..라는 맘이 은연중에 깔리다 보니 속상하기 싫은 맘에 잔소리를 안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드니 겁이 더 많아진 탓이다.


문득 가까운 사이에서의 잔소리는 애정과 관심의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렇다.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내가 애정하는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좀 더 잘되었으면 하는 맘이 잔소리가 된다. 내 주변에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보다 좀 더 행복한 삶이겠구나 싶다. 잔소리에 대해 좀 관대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다. 때론 좀 더 용감히 잔소리도 해줘야겠다. 물론 상대를 고려한 "선택적 잔소리가"가 되도록 신경은 써야 함이다. 어차피 잔소리는 내 사람들에게만 하는 것이다. "잔소리"라는 도구로 내가 네 곁에 있다는 느낌은 계속 주고받고 싶다. 개인주의가 당연해져 가는 세상에서 그게 조금은 더 풍성한 인생이 될 테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