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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로 Apr 12. 2022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시간

<달팽이의 별>(2012)

“길들인다는 게 무슨 의미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거야...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거야” 

-생텍쥐베리, 「어린왕자」중-    


  지구별을 여행하던 어린왕자는 사막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여우를 만나게 되고,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말한다. 길들어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서로에게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며. 어린왕자는 여우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다 이내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를 떠올린다. 장미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처럼 영화 <달팽이의 별은>(이승준, 2012)은 동화「어린왕자」를 무척 닮아있다. 영화 속 주인공 조영찬의 모습이 어린왕자의 행동과 태도를 닮은 것은 물론, 동화 속 대사들은 조영찬과 와이프 김순호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조영찬과 김순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어린왕자가 세상을 여행하며 느꼈던 많은 지점들과 맞닿아 있다.


  <달팽이의 별은> 추운 겨울 조영찬과 김순호가 하늘 멀리 연을 띄우는 아주 짧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바람에 의지해 하늘로 올라간 연은 자유롭게 하늘을 난다. 이후 영화는 특별한 극적 사건 없이 일상적인 두 사람의 생활을 배열한다. 많은 영화들이 영화 초반에 인물에 관한 정보들을 배치하고 이후 사건으로 집중시키는 반면, 이 영화는 인물에 관한 정보를 영화 전반에 걸쳐 조금씩 제공하는 구성을 보인다. 이것은 시간(촬영)의 순서대로 편집된 결과로 보이며, 이는 작위적인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영화의 태도로 읽힌다. 시청각 중복 장애를 가진 조영찬과 3살 무렵 사고로 인한 척추장애로 남들보다 작은 체구를 갖게 된 김순호가 집 안에서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한다. 그리고 함께 학교를 가고, 어려운 시험도 함께 본다. 조금은 특이하고,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모든 순간, 둘은 언제나 함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조영찬은 아내 김순호의 이끌림을 받고, 김순호는 자신의 작은 체구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남편 조영찬과 나눈다.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언어를 대신한 점화로 촉감을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감싸 나간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어린왕자」속 여우의 말처럼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존재’로 존재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일상 뒤에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조영찬의 시다. 조영찬의 시들은 앞서 나타난 일상의 모습과 연계된 문장들로 구성되는데, 자신이 놓인 환경을 새롭게 사유하는 짧은 아포리즘들은 평범하고 조금은 납작했던 일상들을 풍부한 감정 상태로 바꾸어 놓는다. 이로써 관객들은 점차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바람과 빗방울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마치 태초로 이끌고 가는 듯한 조영찬의 시는 단단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따듯하다. 단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없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그의 시구처럼 영화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그의 삶은 구체적이고,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또한 대화가 많지 않은 일상 장면 속에서 조영찬의 시는 내레이션으로써 영화를 이어 나가는 직접적인 기능을 충실히 해낸다. 


  이 영화는 전체 제작비 3억 중 4천만 원을 사운드 작업에 사용할 만큼 소리의 재현에 큰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전체적으로 사운드 녹음, 폴리, 오디오의 세심한 배치 등이 느껴지지만, 여러 소리 중에서도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공간음(소음), 조영찬의 테마소리가 관객의 주의를 끈다. 이 소리는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이 물속에서 수영하는 소리를 변형한 것으로, 조영찬이 평상시에 느끼는 소음을 표현한다. 감독은 조영찬이 물속에서 자유롭다는 사실과 그가 늘 자기가 고독한 우주인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소리와 우주공간의 느낌이 드는 소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외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빗소리, 바람소리, 손과 발이 벽과 지면에 닿는 소리 등 아주 작은 소리를 예민하게 포착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작은 것들을 돌아보고 귀 기울이게 만드는 대신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생활상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지우기도 한다.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아내 김순호가 몸이 약해 병원에 가는 비용이나 이사 시 어려움 등이 언급되고 있지만, 영화 텍스트에서는 이를 전부 생략하고 이를 관객에게 상상의 몫으로 맡기고 있다. <달팽이의 별>은 여타 장애인이 등장하는 많은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방식으로, 오히려 배우자와의 관계나 주인공의 내적 욕구에 집중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과 숭고함을 표현 한다. 이런 영화의 태도는 영화 외적으로도 드러난다. 세계 10개국 이상과 공동작업을 통해 제작된 이 영화는 방송, 영화 2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으며, 방송과 영화 버전 모두에 말자막 사용 되었고,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베어프리 영화로 개봉되었다. 이후에도 이승준 감독은 <달에 부는 바람>(이승준, 2016)을 통해 중복장애를 가진 가족의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달팽이의 별>은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마음으로 보아야 할 세계를 넌지시 안내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왕자」 속 대사처럼 그동안 눈과 말에 가려 알지 못했던 세계를 잊지 말라며, 다정한 손길을 내민다. 조영찬이 한 겨울 공원에서 홀로 선 나무를 끌어안고 짓던 미소처럼, 그 세계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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