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칭 포 슈가맨>(2011),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두 예술가가 있다. 음악가 로드게리즈와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이 낯설고도 생소한 이름은 그동안 음악과 사진의 ‘역사’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두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서칭 포 슈가맨>(말릭 벤젤룰, 2011)의 주인공 로드리게즈는 유명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자신의 본국 미국에서 2장의 앨범을 발매한다.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 이어 어느 영화보다 더 픽션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여행자의 가방에 담긴 그의 앨범이 지구 반대편 남아공에 퍼지면서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다. 1960년대 당시 악명 높은 인종분리정책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저항하던 남아공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은 자유의 상징이자, 저항의 도구가 된다. 더 큰 반전은, 로드리게즈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칭 포 슈가맨>은 주인공 ‘로드리게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무명의 음악가였던 그를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시키고, 밥 딜런과의 비교를 통해 그가 천재적인 음악가였다는 사실을 더욱 부각한다. 심지어 그가 무대 위에서 자살했다는 소문을 조심스레 이야기하며, 관객의 이목을 최대한으로 모아낸다. 영화는 로드리게즈에 대한 큰 물음표를 영화의 서두에 던져 놓음으로써, 사실관계보다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 수 없는 미스터리 한 ‘어떤 존재’ 자체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어 로드리게즈의 음악과 함께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화면의 풍부함을 더한다. 미시간, 캘리포니아,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 등 미국과 남아공의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악은 각 도시의 색깔과 역사적 배경에 맞물려 있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과거 이야기를 묘사하는 재현 방식이다. 영화에는 실제 과거 푸티지로 보이는 디트로이트의 거리와 케이프타운의 풍경과 카페 안의 로드리게즈의 모습을 담은 재연 푸티지가 사용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푸티지들을 동일한 8미리 필름 룩으로 표현하면서 이것이 실제인지, 재연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가 처음부터 픽션과 논픽션 양쪽의 장점을 모두 영화 내 서사구조에 기입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로드리게즈에 대한 신비화를 마친 영화가 구체적인 추적을 시작한다. 남아공의 로드리게즈 열혈 팬 스티브 시거맨과 음악평론가 크레이그 바톨로뮤-스트리 드롬이 뮤지션의 궤적을 찾아 나선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로드리게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피라미드 구조와 같은 형태로 정보를 제공하지만, 추적이 시작된 이후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구조로 변화한다. 중반 이후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존재를 궁금하던 사람들은 흥분한다. 그리고 50분 간 베일에 싸여 있던 그가 자신을 임금노동자라고 소개하며, 유유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앨범이 남아공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당신이 그곳에서 슈퍼스타였다는 말에도 별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성격 탓일까, 의도된 편집일까. 영화는 그토록 찾고자 했던 로드리게즈를 발견하고도 직접적인 인터뷰를 삼가고, 3명의 딸에게 마이크를 돌린다. 이후 로드리게즈 남아공으로 떠나 콘서트, tv에 출연하는 등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 그려지지만, 영화는 끝까지 로드리게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감춘 채 이미 준비된 플롯을 실행하려는 듯 보인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존 말루프, 2013)의 주인공 비비안 마이어는 시카고에서 유모 일을 하며 15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는다. 특이한 프랑스 억양에 큰 체구를 가지고, 여러 번 이름을 바꿔 쓰며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내보이지 않았던 수집광 비비안. 그녀는 안목 있는 거리의 사진가였지만, 단 한 장의 사진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다.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경매장을 자주 드나들던 역사학자 존 말루프는 우연히 집 앞 경매장에 들렸다가 오래된 사진들이 가득 든 사진 박스를 구매하게 된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사진들은 온라인에서 예상치 못하게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흥분한 존 말루프는 사진의 주인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전시하는 하나의 갤러리로 변모한다. 그녀의 사진들을 그녀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 인터뷰의 보조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 서사를 구성하기도 한다. 또한 비비안이 촬영한 8미리 영상이나 녹음테이프 등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하여, 비비안이라는 존재를 다층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미지 구성(시퀀스)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인물들의 인터뷰로만 채워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칭 포’의 방식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큰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개봉한 <김 군>(강상우, 2018)이 익숙하게 알려져 있던 광주항쟁을 새로운 시선으로 제시하기 위해 ‘서칭 포’의 방식을 차용한 것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서칭 포’ 방식을 차용한 여러 영화들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각각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앞서 살펴보았던 두 편의 영화에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서칭 포 슈가맨>이 ‘포 슈가맨’ 즉, 인물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찾아서’라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때문에 <서칭 포 슈가맨>은 로드리게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적 구조를 강조하기 위해 시간 순서를 재편집한다. 이것의 이면에는 사람들(관객)이 기대하는 ‘성공을 이룬 무명의 음악가’, ‘평범한 히어로’와 같은 반전의 ‘클리셰’를 서사 구조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영화의 대중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 않았을까. 이에 반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영화가 추적하는 대상이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더욱 깊게 다룬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많은 것들을 ‘찾고자’하고 그 과정을 통해 또 많은 것들을 ‘발견’한다. 사람, 자연, 사건, 진리 등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위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역시 ‘사람’의 발견이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는 우리가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들이 있다. 특별한 삶을 갖고 있지만, 영화를 통해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 그들의 인생.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늘도 다시 한번 사람과 현실의 위대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