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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로 Apr 12. 2022

몸짓으로 쓴 애도사

<피나>(2011)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한 세계를 마주하는 일과 같다. 그러나 하나의 소우주와도 같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벽히 재현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인물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감독은 필연적으로 이런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어떤 부분(시간)을 이야기할 것인가’ 


  <피나>(빔벤더스, 2011)는 독일 현대 표현주의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다룬다. 이미 이전에 피나 바우쉬에 대한 2편의 영화가 있었지만, 빔 벤더스는 피나 바우쉬가 살아온 삶이나, 그녀의 작업세계를 친절히 설명해나가는 전기적 방식보다 그녀의 삶의 일부분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애쓴다.(<그녀에게>(페드로 알모도바르, 2002)는 ‘카페뮐러’라는 무용극의 스토리를 극영화 전체로 확장시킨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드림스>(안네 린셀, 라이너 호프만, 2009)는 부퍼탈 청소년들이 ‘콘탁트 호프’라는 무용극을 연습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것은 포스트모던댄스와 연극적 양식이 결합된 형태로 현대무용의 혁명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그녀가 35년간 집중적으로 구현해온 체스처와 움직임이 섞인 독특한 춤이다. 이처럼 <피나>는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 <봄의 제전>, <카페 뮐러>, <콘탁트호프>, <보름달>을 재현하며, 재현의 주체가 되는 부퍼탈 무용단원들과 함께 그녀를 회고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제4의 벽을 깨고 카메라를 무대 한가운데로 밀어 넣어 무용이 펼쳐지는 무대의 시공간을 영화의 시공간으로 전환시킨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작업 속에서 빔 벤더스는 언제나 자신의 영화에서 새로운 형식과 표현을 찾고자 노력해왔다. <피나>에서 그가 찾은 방법은 놀랍게도 3D다. 피나 바우쉬와 오랜 시간 영화 작업을 구상해오던 빔 벤더스는 2009년 <아바타>(제임스 카메론, 2009)을 보고 <피나>를 최초의 3D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3D로 구현된 무용극은 관객에게 충분한 공간과 깊이를 볼 수 있게, 아니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덕분에 피나 바우쉬의 춤은 영화 속에서 미학적 배열이 아니라 관객의 주관적 체험의 장소가 된다. 우리가 흔히 예술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해 품는 의문들, ‘기술의 발전이 예술의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피나>는 그 물음에 대한 가장 모범적 답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무용극 사이에 등장하는 인터뷰다. 인터뷰에는 다양한 연령과 성별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무용단원들이 등장하는데, 어떤 이는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어떤 이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침묵한다. 그리고 경건하면서도 건조한 인터뷰 목소리들은 인터뷰어의 화면 위로 보이스 오버된다. 인터뷰는 마치 그녀를 침묵으로 애도하듯 하기도 하고, 속마음을 꺼내 이야기하듯 보이기도 하며, 몸으로 모든 말을 대신했으니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인터뷰어의 표정 또한 다양하다. 관객들은 그들의 표정에서 슬픔을 읽기도 하고, 무기력을 읽기도 한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지만, 발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들의 얼굴을 통과하며 인터뷰 자체를 ‘정신적인’ 상태로 만든다. 이 인터뷰 양식은 그들에게 오랜 시간 스승으로서 피나 바우쉬가 가졌던 정신적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당시 그녀를 잃은 사람들의 상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다.


  빔 벤더스 감독은 피나 바우쉬의 작업을 무대 밖 야외로 끌어내기도 한다. 모더니티가 느껴지는 에스컬레이터나, 공공체육관, 부퍼탈의 교차로 그리고 그녀의 작업에서 중점적 주제가 되었던 자연 공간 등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무대가 된다. 이것이 그녀와 빔벤더스가 생전에 계획한 것인지, 감독의 의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영화가 3D 기술을 빌려와 표현의 극대화를 이루고자 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야외 촬영 또한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의 시각적 한계를 깨고자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예기치 않은 공간들의 결합은 단순한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영화 안에서 새로운 충돌을 만들어내며 피나 바우쉬의 몸짓을 더 멀리 전달해나간다.


  피나 바우쉬는 이 영화가 촬영되기 5일 전 사망했다. 하지만 영화에는 그녀의 죽음이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녀의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 애도하지 않는다. 빔 벤더스와 그녀의 동료들은 생전에 그녀와 함께 나누었던 움직임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며, 그 강렬함과 아름다움을 타자인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세심히 돕는다. 절절한 동료애가 느껴지는 이 영화에서 이처럼 죽음은 언어가 되지 않는다. 피나 바우쉬와 함께 했던 그들의 몸짓만이 따듯한 애도사로 남겨질 뿐이다. 이것이 빔 벤더스가 자신의 오랜 친구인 피나 바우쉬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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