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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an 29. 2024

직장인 독립기: 1. 사주를 보다

D-55. 회사 밖에서 밥벌이 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이야기는 직장을 나와 독립을 이루기까지의 일 년 동안의 기록이자,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나의 여정기입니다.

D-30. 회사 밖에서 밥벌이 할 수 있을까요? D-30. 회사 밖에서 밥벌이 할 수 있을까요? 

퇴사까지 D-55


2024년 갑진년, 새해 첫 주 금요일 태어나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그것도 오후 반차까지 쓰고. 회사가 아닌데도 괜히 마음이 급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신촌 어느 골목 지하에 위치한 유명 사주 집에 들어가는데 괜히 마음이 두근거린다. 연말부터 계속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있는데 사주를 보고 나면 좀 나아질까? 제발 나쁘지만 않기를...! 바라며 '안녕하세요. 사주 보러 왔는데요.' 나는 인사를 건넸다. 주변을 돌아보니 법정 스님 책과 여러 명리학책이 보이고 은은한 향초 냄새가 난다. 세련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공간이지만 왠지 마음이 편안하다. 선생님(편의상 이렇게 일컫겠다)은 나의 이름과 생년월일(태어난 시간)을 물어보시고 사주와 운세 풀이를 시작했다.


간단히 들은 나의 사주와 2024년 운세는 다음과 같다.   


올해 이동수가 있고 남자 사주를 가지고 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잘 됐을 것이라고, 그래서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많다.

나에게 비교적 젊은 나이인 41살에 대운이 찾아오고 전반적으로 대기만성할 것이다.

나중에는 아주 넓은 집에서 산다. 즉 부자가 된다.

무엇보다도 남의 밑에서 일하지 못한다.

2024년에는 더욱 일이 잘 풀린다고 했다.


아니, 너무 좋은데? 이게 뭐지. 결과가 예상외로 너무 좋아서 약간 마음 한편에 불신이 생겼다. 그래서 다른 곳도 가 보고 결과를 비교하기로! 지인이 추천해 준 다른 한 곳을 매우 즉흥적으로 가게 된다. 이번에는 연남동이다. 이 추진력 뭐지?...그곳은 웨이팅이 있는 홍대 사주 핫플로 바로 좀 전에 간 곳보다 20대 여성분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이었다.


사주 결과는?   

사내 사주다. 아주 장군감이다.

남이 벌어서 먹여주는 것보단 스스로 일해서 돈 버는 걸 좋아한다.

고집이 세고 정이 많다.

무관의 사주다. 내가 결정하고 옳고 그름을 내가 판단한다.

31살부터 나의 성취감을 이루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고 누군가에 의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타인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해외 가면 좋고, 노년에 매우 부자가 된다.

39살부터 일을 많이 안 해도 잘 될 거다. 그전까지 버는 돈은 평소 월급과 비슷할 것.

31~41살 내가 세진다. 일한 만큼의 대가는 돌아온다.


기억나는 것만 적은 건데,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일할 수 없는 사람이고, 일이든 사람이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예상했지만 나는 매우 자기 주도적이며 자기 의지가 강하고 동시에 매우 고집이 센 사람인 것이다. 그냥 내 사주에 '자기 아(我)'로 온통 채워진 거 아닐까? 이 정도면 지금까지 회사 다닌 게 기적 아닌가.



내가 사주를 본 이유


난 사실 사주를 믿지 않는다. 30년이 넘게 단 한 번도 직접 내 돈 주고 사주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내가 2024년이 되자마자 태어나 처음으로 사주를 본 이유가 있다. 그것도 두 곳이나 갔다.


저는 이제 혼자 일해도 될까요?
2024년부터는 회사를 나와 독립해도 될까요?


결국 내가 계속 묻고 싶었던 건 위 질문이다. 내 유년 생활이 어땠고 부모 복이고 연애운이고 이런 건 정말 관심이 일도 없었다. 그냥 저 질문을 하기 위해 사주를 두 탕이나 뛰었다. 지난해 내내 내가 고민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결정을 내렸던 것. 바로 긴 직장인 생활을 그만하고 개인 사업자(혹은 프리랜서/프리워커)로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기 전 나름 마지막 관문(?)이었다. 사주를 두 군데 보는 내내 마음이 두근거린 이유는 혹시라도 내가 어렵게 내린 결정에 (믿지는 않지만) 이 사주와 운세가 찬물을 끼얹을까 봐... 혹시라도 내 선택이 틀렸다고 온 세상이 말할까 봐. 아니, 오히려 온 세상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나는 운명론자가 아니다)
네가 열심히 하는 이상 절대 안 될 일은 없다고. (낙천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사주를 믿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결과가 나와도 믿지 않는다. 세상이 온전히 나의 편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믿으려고 한다.


사주가 아닌, 열심히 일해 온 나를 믿는다.

회사를 나와 무한의 가능성을 펼칠 나 자신을 믿는다.



2020년 여름 어느 날 박민규 작가의 '회사 말고 내 콘텐츠'를 처음 읽었을 때, 이런 감상평을 적었다. 

'콘텐츠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글쓰기는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회사 콘텐츠가 아닌 내 콘텐츠를 해야 한다. 커리어는 결코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콘텐츠는 언제나 지금이 적기다.'


그리고 3년이 걸렸다. 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나오기로 결심하기까지. 어느덧 나는 9년 차 콘텐츠 마케터가 됐고 인턴, 아르바이트 등의 정규직 아닌 경력까지 합치면 회사만 거의 10년 다녔다.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을 직장인으로 살았는데, 그럼에도 처음 프리랜서 번역가에서 안정적인 직장인이 됐을 때 결심했던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던 후회할 거라면 이왕이면 무엇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이제 회사의 콘텐츠가 아닌 내 콘텐츠를 하려고 한다앞으로의 이야기는 직장을 나와 독립을 이루기까지의 일 년 동안의 기록이자, 프리워커 여정기입니다. 


사주를 보고 며칠 후, 3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떠난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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