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sat Sep 14. 2020

내 마음은 총각무 김치였다.

버릴 수 있을 때 버리자

 시어머니의 김치는 맛있다.

  



김치 냉장고 한 칸은 꽉 차 있다. 공간이 남아 있었던 적이 없었다. 매해 김장을 담가주시는 시어머니의 김치이다. 몇 년을 묵혀 있는지도 모르는 총각무 김치는 몇 해 그것이 누적되어 4통이나 되어 김치냉장고의 절반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유난히 총각무 김치를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한 마음인 것을 나는 아껴 먹겠다는 마음이 묵은지가 되어버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묵었는지도 모를 총각무 김치는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한 채 몇 년 것이 쌓여 있게 된 것이다. 시어머니의 김치는 정말 너무 맛있다. 어머니의 김치를 맛본 사람 누구도 그 맛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시어머니의 김치는 없던 입맛도 살아나게 해 준다. 시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가 좋다. 사 남매 역시 할머니 김치를 좋아한다.  할머니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냐며 김치를 맛깔나게 한입 먹는 셋째는 할머니의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몇 해 전 어머니와 관계가 극도로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시어머니 연세는 3년 후면 70을 바라보신다. 시집을 올 당시 40 후반의 시어머니는 꽤 젊으셨다. 내 나이가 벌써 시어머니가 나를 처음 보았을 때의 나이가 되어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하셨다. 아버님을 도와 공장을 운영하시면서 억척같이 돈을 모아 자식들도 가르치고 집도 사고하셨는데 살만하니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사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것이 아니니 말을 듣고 고생을 많이 했구나! 할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우리 부모님도 고생하셨는데 본인의 고생한 이야기를 똑같이 수없이 하다 보니 귀에 딱지 질 정도로 들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 고생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고 늘 아프다고만 하셨다.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픈 곳은 매번 달랐다. 결정적으로 허리가 아프시고 무릎까지 아프시다면서 어디 가서 고구마순을 몇 자루를 뜯어왔네! 봄나물을 몇 봉지를 캐왔네! 산 밤을 등산배낭 한가 득 주워왔다며 자랑을 하셨다.

어느 해는 밭을 빌려 농사까지 하셨다. 이 모든것이 쪼그려 앉아서 하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허리가 아프면 살을 빼야 한다고 했다며 일주일에 2~3번 이상을 등산하러 가셨다. 무릎이 아프시다면서 무릎을 혹사하는 것만 하시는 시어머니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도 나이가 들고 육아에 지쳐 몸이 좋지 않은데 내가 아픈 곳은 바로 어머니의 아픈 곳이 되어 어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로 끝이 났다.      




어머니가 뜯어온 나물로 만들어 주신 밑반찬이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주워온 산 밤이 너무 싫었다.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가  꼴도 보기 싫어졌다. 차라리 안 먹고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싶었다. 어느 순간 그것들은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해 있었고 나는 못돼 쳐 먹은 며느리가 되어있었다. 어머니를 마주하는 순간이 싫었다. 안부 전화 한 통에도 아프다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은데 시어머니의 아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시어머니가 밉고 싫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 올해는 김치 담그지 마세요. 해주셔도 안 먹을 거예요. 아프신데 그냥 사다 먹어도 되니까 김장하지 마세요. 김장보다 어머님 건강이 더 중요하잖아요.” 이 말은 어머니의 건강이 더 중요한 게 아니라 일하고서 아프다는 소리 하지 마시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결국, 시어머니는 당신은 사다 먹는 것도 남의 것도 비위가 좋지 않아 못 드신다며 소심하게 며느리에게 줄 김치 한 통과 함께 당신이 드실 김장을 하셨다.

2년 전 어머니는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셨다. 더 아프시지 않게 관리를 잘해달라는 두 아들과 며느리의 부탁을 잘 들어주시기 바랄 뿐이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양이 줄었을 뿐 나물과 산 밤은 여전히 우리 집 냉장고에 채워진다.   


버림을 통한 깨달음    

                                                     



 년을 묵혔는지도 모를 묵어도 너무 묵어서 물컹해진 총각무 김치 4통을 모두 버렸다. 버릴 것을 마음먹고 그래도 해주신 정성과 아까운 마음에 이것을 어찌 찜이나 밑반찬으로 승화를 시켜보려 시도를  보았지만, 회생이 불가하다고 느끼는 순간 묵은 총각무 김치는 모두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버려져 버렸다. 버리는 순간까지도 죄를 짓는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비워진 통을 깨끗이 닦아 엎어 놓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동안의 시어머니와의 묵은 감정도 함께 버려 버렸다.  마음이 버려진 총각무 김치였다.  년을 묵혔는지도 모를 감정은 너무 묵어서 물러 터져버려 있었다. 묵힌 감정이 그렇게 홀가분하게 어머님이 해주신 묵은 총각무 김치와 함께 버려지고 나니 올해 변함없이 담가주실 김장김치와 총각무 김치는 이제는 묵히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알맞게  익었을  총각무 김치를 맛있게 먼저 먹어버리고 더는 감정을 묵히지 않기로 했다. 묵은 감정이 어디 시어머니의 감정뿐이겠는가! 누군가에게 쌓여 있을 묵은 감정도 버릴  있는 용기를 내는 것도 버림을 통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을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장인어른 목욕시켜드리는 사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