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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sat Sep 28. 2020

나의 직업은 뭐지?

엄마의 직업을 만들어준 아이


사는 게 그런 거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지금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나”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금쪽같은 내 새끼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아왔다. 그저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하나라도 더 먹이고 다른 집 아이들과 견주었을 때 구김살 없이 당당하게 키우기 위해 전적인 지원군으로 삶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부모의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온전히 나의 에너지를 자식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오직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첫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를 위해 살아 본 적이 없으니 긴 세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저 나는 20년을 내 이름 석 자 대신 아무개의 엄마로만 살아온 것이다.     




벌써 내 나이가 마흔을 훌쩍 넘어 쉰 살이 되려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00세 시대라고 하니 그 기준으로 명을 산다면 내 인생은 50년 남짓 남은 것이다. 이마저도 의학기술이 발달한 현시점에서 이야기인 것이다. 평균 수명으로 따진다면 3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남은 삶의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남은 시간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100세 시대에 맞게 100세를 살아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파서 골골대며 침상에 누워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안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남은 삶의 시간 동안 몹쓸 병에 걸릴지 사고로 생을 마감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하니 내 삶의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전업주부로 사는 삶이 나쁘지 않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에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제일 편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맞춰가며 새끼들 잘 키우고 사는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아무개의 아내 아무개의 엄마로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실, 이 나이에 어디에서 일자리도 주지 않겠지만 어디 가서 일하며 돈을 벌 능력도 용기도 없다.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없지만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서류 기록란에 표시할 나의 직업은 “주부‘이다. 어느 순간 마음 한쪽 편이 허전한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인생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며 살아보자


뭐라도 해야겠다. 뭐라도 하자.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나는 도화지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도화지였다. 그 도화지에 그림이 하나씩 그려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40 평생 컴맹으로 살아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오늘도 일이 많냐고 하는 셋째 아들의 질문에 돈도 못 버는 일인데 그게 일이냐고 대답을 했다. 아이들에게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일하는 엄마가 되어있었나 보다. 

”엄마 직업은 작가잖아 “라는 말에 글 써서 돈도 못 버는데 엄마가 무슨 작가냐며 박장대소를 하는 나에게 그 아이는 ”엄마는 브런치 작가잖아. 작가는 직업이야. 그러니까 엄마의 직업은 작가지! “ 




무엇인가 일을 하면 반드시 생산성과 수익성이 동반해야 한다는 강한 생각을 하는 나에게 베스트셀러를 써야만 작가가 아니고 글 쓰면 작가라며 엄마를 작가라고 인정해주는 아들의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시집을 내야만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책을 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시집을 내기 위해 시를 쓰면 시인이고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면 작가인 것이다. 또한, 꼭 시집이나 책을 출간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결과물에만 비추어지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물에 의해 꼭 돈을 벌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물론 나 또한 그 관점에서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 고정관념을 깨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엄마에게 엄마의 직업이 작가라고 일깨워준 아들을 통해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의 시야가 조금 넓어졌다. 나의 도화지에 글 쓰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글 쓰는 엄마였다.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의 시간에 나의 직업은 아들의 말대로 작가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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