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두 번 경험한 M은 그 고통을 잊은 지 오래다. 3년 전의 그것들. 묵직한 뒤틀림, 꽉 다문 입술 위로 맺힌 땀방울 그리고 손끝부터 모아진 기운이 목청에서 바둥거렸다. 그땐 그랬다. 아팠지만 곧 나아졌고 힘들었지만 새 생명으로 인한행복감으로 상쇄되었다.
최근 M은 이직을 했다. 5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아왔으며, 스스로를활발한 구직자로 인정하기 위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냈다.
요가,에세이 쓰기,강의안 만들기,러닝 동아리, 줌 회의 참석하기 그리고 요리와 친목 모임... 다 매일같이 했다. 모두 잘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것들이었고 못하는 걸 굳이 꼽자면 내려놓기와 거절하기였다.
M은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물로 보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동료의 업무 부탁과 지인의 소소한 어려움은 발 벗고 도왔다. 친절을 받을 땐 불편했지만 주는 건 마음 편해했다.
돌이켜보니, 두 아이의 자모회활동 8년 동안 모임을 주도했었고 자모들과 학교 그 둘 사이에서의 책임감을 M은 감당해냈다. 행사와 수업 진행, 대립과 동조의 의견 위로 중립 지키기... 이를 진실되게 과묵하게 해 나갔다.질투와 경쟁도 경험 속에 있었다. 그러나 내려놓진 못했다. 책임 뒤로 아이와 자아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일은 많이 생겼다.좋은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벗고 보면 M의 마음은 금이 간 유리조각 같았다. 사람을 돈으로 보는 원장, 제일 잘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동료,자기중심으로 지구가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 친구 엄마. 좋은 게 좋다며 일조했던 M. M은 그들에게 싫은 소리 하나 거절 하나 못했다. 이것도 힘든 일 중의 하나였다. 고충이 무엇으로든 상쇄된다는 보상의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한번 당해봐서 맷집이 생겼으려나...
출산의 고통을 하얗게 잊고 육아의 행복감에 젖어 다시 임신했을 거라고 해두자. 스트레스를 받던 직장 생활을 쫑내고 쉴때쯤 다시 '난 역시 일을 해야 돼' 하는 다짐이 생기는 일종의 잊고 있던 용기와도 같았다. 최근 M의 이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