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령의 한, 생령

입양

by 양다경

한이 깊으면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죽은 이처럼 영혼을 분리시켰다. 생령 혹은 사념체로 그 혼은 감정의 집결체가 되어 기이하게 나타나곤 했는데. 그 모습은 원망의 잔상이기도 한, 불측지연(不測之淵)의 영의 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불측지연 (不測之淵):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이란 뜻으로, 위험한 곳 또는 불안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네이버]


오희정은 불현듯 생겨난 집안 망령으로 오늘도 잠을 못 자 거무튀튀한 얼굴에 피곤이 녹아들고 있었다. 그것은 낮에 잠깐씩 자신을 지켜보는 것은 기본이고, 한 번은 안방 침실 밑, 슬그머니 나타나 곁에 있곤 했는데. 희정은 그때마다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얼핏 본 망령의 모습은 아래, 위 푸르스름한 옷에 머리털이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뻗쳐 있고, 어깨 위로는 붉은 피가 덕지덕지 엉겨 붙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것으로 그 탓에 눈은 파여 쪼그라들어있었다. 그런 망령은 살아남은 나머지 눈에 살기를 채워 매섭게 희정을 노려봤는데. 그녀는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해 마주치면 '끄윽 그...' 하며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떨 땐 부엌 한 구석, 쪼그려 앉아 있는 망령. 패인 왼쪽 눈을 손으로 후비적거리고는 그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웅덩이를 만들어내는 환상을 자아냈다. 그러니 희정은 그것을 느끼고 보일 때면 손발이 오그라들어 그대로 가위눌림에 갇혔다. 더 소름 돋는 건 때론 아이가 있는 방에도 왔다간 것으로 보인다는 것. 불현듯 아이 방 천장의 모빌은 흔들리고 있었고, 그 옆으로 정리된 아기의 장난감은 널브러져 있었다. 그럴 때 아기에게 가까이 가 보면, 이상하리만치 울지 않고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인데. 거기다 그것이 밤의 기운을 타는 날이면 끼익 끼익 하는 웃음소리마저 내곤 했다. 그 탓에 희정은 점차 집 안이 오싹한 공간이 되고, 뜻하지 않는 망령과의 동거는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1995년 겨울 끝 무렵. 강현식과 오희정, 둘은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몹시 원했다. 그래서 갖은 검사를 서둘러하였고, 그 결과를 기다렸는데. 의외의 답변, 남편 현식에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희정은 그 사실을 알자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아픔에 가슴 깊이 억울함이 서렸다. 그래서 절망이 극도화돼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녀는 더 이상 상냥하고 따뜻한 이전의 희정이 아니었다. 그러니 현식은 희정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때문인지 집 안 분위기는 쌀쌀함만이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현식은 더 이상 안 되는 일에 집착하지 말자고 하며 아이를 원한다면 아이 입양도 있다고 논의하자고 했다. 희정은 무슨 소리냐며 왠지 입양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것도 잠시 실낱같은 희망인가도 싶었던 건, 남편이 사진으로 보여준 아이의 사진때문이었다. 또릇한 눈망울에 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아이. 희정은 입양할 아이를 보자마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핏줄이라는 개념, 그것을 무시하기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으니.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받아들일 수 있냐는 스스로의 자문. 그러나 그때, 아이 사진을 보게 된 친정엄마까지 극구 입양을 추천했으니 그녀는 갈수록 흔들렸고, 그래서 입양을 알아본다는 남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자 두어 달이 지나 생각보다 빠르게 입양 심사에 통과되었다고 하는 현식. 희정은 왠지 설레며 가슴이 마구 벅찼다. 막상 입양이 된다고 하니 여간 기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들뜬 그녀는 같이 입양처를 방문해 아기를 데려오자고 현식을 졸랐다. 그러나 극구 자기가 가서 수습 절차를 마치고 데리고 오겠다는 현식. 집에서 아이를 맞이할 준비만 하라고 거듭 당부하는 그였다. 그 말이 희정은 무척 서운했지만 급하게 이루어진 입양이라, 사실 준비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현식의 의견을 이해하며 희정은 아이 용품을 사고 아기자기하게 아이의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약속된 따스한 봄날 오후, 초인종이 울리고 현식은 맑게 웃으며 아기요람을 들고 성큼 들어섰다. 그는 "많이 기다렸지?" 하며 희정에게 말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서 그 요람을 거실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기 엄마는 고인이라는 말을 희정에게 전하며 아이를 살짝 가린 덮개를 거뒀는데. 이제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 어찌나 볼이 빨간지 복숭아를 연상하게 했고, 통통한 얼굴이 무척 귀여운 아이였다. 또 그 모습은 어찌나 맑은지 희정은 막상 보니 천사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가 살포시 들어 품에 안았다. 안으니 생글생글 웃어 보이며 옹알거리는 아이가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희정은 그 웃는 모습에 따라 웃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따뜻한 엄마가 되어줄게..." 하며 눈물을 훔치는 희정. 그녀는 인연이란 이렇게도 오는구나 싶어 그 애틋함이 너무나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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