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식당밥은 맛과 가성비가 꽤 좋은 편이다. 동종업계에 소문이 날 정도로 메뉴도 다양하고 양도 푸짐해서 다른 회사 식당 담당자가 가끔 견학을 오기도 할 정도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회사 식당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이 내게 너무 짜고 맵고 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림과 국은 한 숟가락 입에 떠 넣고 짠맛에 깜짝 놀라 맽어버린 적도 있다. 고춧가루나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을 잘못 먹고 혀가 아파서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좀 있다. 가끔 너무 달게 나오는 반찬을 뒤적이며 이게 디저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동료에게 회사 밥이 예전보다 짜고 매워지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며 맛있게 냠냠 잘 먹는다. 내 미각이 예전보다 많이 예민해졌나 보다 하고 마는데, 자극적인 맛이 불편해서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 가는 것이 꺼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주일에 3번 이상은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회사에는 점심시간에 팀장이 팀원들을 이끌고 줄지어 식당에 가는 독특한 식사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팀장, 최고참 선임, 그다음 연차, 막내가 열을 지어 식당으로 향하고 식사자리도 서열에 맞춰 주르륵 앉는다. 오래된 묘한 관습인데, 팀장의 특성에 따라 팀원들끼리 가라거나 일부러 외부 약속을 만드는 팀장도 있기는 하지만 팀원들이 팀장을 챙겨야 한다는 것은 불문율이다. 특히 최고참 선임이 점심시간에는 팀장 옆에 꼭 붙어있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나는 우리 팀의 최고참 선임이고 회사밥을 참 좋아하는 우리 팀장은 외부 약속이 정말 하나도 없다. 그래서 우리 팀원들이 모두 점심 약속을 잡아 팀장이 혼자가 될 때에는 팀장의 점심시간을 내가 챙겨줘야 한다. 날씨가 좋았던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팀의 팀원들이 속속들이 외부 약속을 잡았다. 2주 동안 나와 팀장 단 둘이서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은 날이 족히 8일은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회사밥을 먹기 싫다는 생각이 마구 몰려오던 지난 화요일에 나는 장염에 된통 걸렸다.
이틀을 물만 먹고 식은땀 뻘뻘 흘리며 앓아누워서 생각해봤다. 잘먹고 잘자던 나는 왜 이 시점에 갑자기 장염에 걸렸는가? 내 입에는 안 맞는 회사 밥을 내리 여드레 동안 먹어서 인 것 같다. 바쁜 시기를 지나며 약해진 면역력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입에 맞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먹은 것이 적잖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나의 연약한 장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몸을 추슬러 출근하는 목요일 아침에 다짐을 했다. 이제 팀장이고 나발이고 모르겠다. 다음 주부터는 팀장님께 '알아서 식사하소서'라고 말하고 내 입맛에 맞는 주변 맛집으로 뛰어갈 거다. 내가 살고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