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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04. 2022

나는 솔직하게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는 책을 많이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불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처음부터 이런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친구 A의 엄마를 보면서 조금씩 마음에서 욕심이 생겼다. 친구 A의 엄마는 내가 놀러 갈 때마다 늘 책을 읽고 계셨다. 때때로 영어소설을 읽으시며 책 내용에 대해 A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쩔 때는 내게도 같이 읽자고 하여 나를 당황시키기도 하셨다. 나는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엄마를 둔 친구가 부러웠다. 우리 엄마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진 친구 엄마의 모습이 무척이나 멋져 보여서 따라 하고 싶어졌다. 잘 따라 해서 나중에 내 아이의 친구들에게 우아하고 고상하게 책 읽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친구들에게 어깨를 한번 으쓱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 같이 읽는 멋진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바뀌었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 하는데, 밥벌이에 코가 꿰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책은 간간이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접하곤 했다. 성실한 독서를 하지 못하다 보니 읽고 이해하는 깊이가 생각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소설 읽기에 취약해서 3년째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소설에 대한 감상을 나눌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아몬드>, <페인트> 같은 청소년 소설을 선호하는 수준인 나에게는 모임에서 다루는 깊이 있는 소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살살 눈치를 보며 아는 척하고,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을 때에는 다른 이들의 블로그나 평론을 읽고 그것이 마치 나의 생각인 양 위장하여 답을 했다. 모임에서 내가 반론을 제기하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언제나 끄덕끄덕하며 남의 이야기에 맞장구치기에 바빴다. 독서모임이 끝나면 뭔가 많이 배운 것 같았지만 금방 잊어버렸다. 책을 읽기는 하였으나 내 것으로 만든 것은 거의 없어서 금세 까먹고 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다가는 이번 생에 책 잘 읽는 사람이 되기는 글러먹을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일단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읽었을 때의 나의 감정에 충실하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주변에 설명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1년에 단 두 권만 읽어도 좋으니 이해 안 되는 것에 대해 하나씩 질문을 던져보면 이해력이 좀 좋아질 것 같았다. 더디긴 하겠지만 기억에는 남는 문구도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독서모임에서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석 달 전에 읽은 <쇼코의 미소>에 대해, 나를 제외한 모임의 모든 참여자가 감동적이다,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다들 손뼉 치는 분위기에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많아서 감동을 느끼는 지점까지 도달하지도 못했고, 어느 부분이 슬픈지 잘 모르겠다고 조용히 말을 했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말을 잘 안 하던 내가 말을 해서인지, 모두가 감동했다는데 나만 감동을 안 했다는 것에 놀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흠칫 놀라는 분위기였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본문 중에 이해가 안 되는 몇 군데가 있었는데, 책 말미에 붙은 평론가의 해설을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평론가의 의견을 빌어야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불편한 이유는 평론가의 해설이 없으면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독자를 문학하는 이들의 해설을 거쳐야만 글을 이해하는 무리로 보는 것 같아서라고도 했다. 

     

나의 질문에 사람들이 답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참여자가 나의 주장에 대해 읽는 이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이 소설이라면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조금 덜 불편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럴 수도 있지만 머리든 가슴이든 어느 한쪽이라도 이해가 가야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평론가의 해설을 거쳐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이 다르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조금 있으니 사실은 나처럼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고 하고 나처럼 해설을 읽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람이 두 명이나 나왔다. 나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줄 알았는데 두 명이나 생겨서 신기했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늘 좋은 말만 조심스럽게 하던 독서모임이 점점 거친 토론의 장이 되는 것 같았다. 재미가 확 붙었다. 다음 모임에서도 나서서 말해 보리라고 다짐했다.      


다음 모임에서는 <섬에 있는 서점>을 같이 읽었다.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쉽게 쓴 따뜻한 내용의 소설이라 나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모임 참여자의 대다수는 우연이 너무 많고 사건이 펼쳐지다가 마는 듯한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않다고 했다. 나는 작가가 책을 통한 교감을 말하고 싶었고, 이를 좀 더 부각하기 위해서 중요하지 않은 사건들은 대충 넘어가는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등장인물들이 책을 매개로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부각하려면 우연이라는 장치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저자를 옹호하기도 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나의 주장에 편을 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같은 편이 많았던 지난 모임만큼 신나지는 않았지만 소설을 읽고 이렇게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되자 자신감이 붙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분석을 해서 화두를 던저보리다라고 다짐했다.     


되짚어보면, 나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많이 두려워했던 것 같다. 독서는 지적이고 우아한 활동이니까 책을 읽고 나면 남들이 감동할 만한 멋들어진 문구 한 두 개쯤은 뽑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고 위축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의미를 찾는 것인데 이를 소홀히 하고 남에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에만 관심이 있었던 같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어떻고, 무협지를 읽으면 어떠하리, 읽고 의미를 찾고 감동하고 깨달음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책에 대해 지금보다 더 솔직해져야 할 것이다. 나의 목표는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고 책을 잘 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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