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방 책장에는 책이 두 겹으로 꽂혀있다. 가로세로로 책이 가득 찬 책장은 아이말대로 뒤죽박죽이다. 책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기에, 공간만 생기면 조각 맞추기 하듯이 딸 책과 내 책과 남편 책을 구분하지 않고 여기저기에 빽빽하게 쑤셔 넣었다. 이런 책장에서 딸이 자기 책을 찾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책의 위치를 대충 파악하고 있는 나도 이번에는 아이가 찾는 책을 금방 찾지는 못했다. 한참만에 책장 왼쪽 아래 칸, 가장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체리새우>를 찾았다. 뒤쪽 표지가 내 전공서적에 눌려 구깃구깃해져 있었다. 제일 아끼는 책의 표지가 구겨진 것을 본 딸의 얼굴도 구겨졌다. 딸에게 괜히 미안했다.
한때,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면서 공간을 꽤 잡아먹는 물건들을 과감하게 처분했던 적이 있다. 유행이 지나거나 쓰임이 줄어서 사용하지 않지만 정리하지도 않는, 옷과 신발, 이불, 그릇 등을 최소한만 남기고 모조리 버렸다. 다 읽었거나 흥미가 붙지 않아 읽지 않는 책들도 공간만 차지하는 쓰임이 없는 물건이라고 보고, 갖고 있는 책의 절반 정도를 중고로 팔거나 필요한 이들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옷을 더 사지 않기 위해 옷장을 줄였고, 책을 더 사지 않기 위해 책장은 두 짝만 남기고 다 버렸다. 싹 치워버리니 집이 넓어졌고 깔끔해져서 보기에 좋았다.
이렇게 2년을 지난 지금, 옷과 신발, 이불, 그릇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책은 늘어났다. 수용범위를 넘은 책들을 감당지 못한 가여운 책장은 급기야 책을 꾸역거리며 토해냈다. 토해낸 책들은 방바닥 한편에 뒤엉켜 쌓였다. 보고 싶은 책을 꺼내려면 겹겹이 쌓인 책들을 헤쳐야 하고, 책을 찾다 무너져서 책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책의 모서리에 발등이 찍혀 눈물을 쏙 빼는 일도 종종 있다.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무질서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지만, 여분의 책장이 없으니 방바닥에 쌓아놓는 것 이외에는 방도가 없다.
읽고 싶은 책을 사면 책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이를 용납하지 않고 책의 총량을 정해두는 어이없는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미니멀한 삶이 단순함을 통해 편안함과 효율성을 도모하는 데 있다는 본질을 간과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 읽은 책과 안 보는 책을 주기적으로 잘 처분하기만 하면, 적합한 양의 책을 보유하면서도 얼마든지 미니멀하게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적게 소유해야 한다는 외형에 집착하느라 엉뚱한 규칙을 세워 버렸다는 거다. 책이 늘어나는 게 뭐 그리 비난할 일이라고 집착하고 통제했는지, 2년간 참 쓸데없는 고생을 한 것 같아서 헛웃음이 나온다.
이제 알았으니 바꿔야겠다. 그래서 조만간 책장을 새로 장만하기로 했다. 잘 쓰지 않는 아이 방의 붙박이 옷장을 떼고 그 자리에 책장을 넣고, 거실 벽면 한쪽도 책장으로 꾸밀 생각이다. 그러면 책을 찾다가 떨어지는 책에 발등을 찍힐 일도 없을 것이고, 서로 몸을 부비며 꽉찬 퍼즐모양으로 꽂혀있던 책들도 숨을쉬게될 것이며, 버거워하던 기존 책장의 몸집도 가벼워질 것이다. 미니멀한 삶은 숫자를 지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편안함과 효율을 추구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책장을 넉넉하게 두고도 공간을 다 채우지 않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책장을 다 채운다 해도 그것은 쓰임이 다한 책을 정리한 결과 즉,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책의 규모이므로 불만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작년, 재작년보다 한걸음 더 발전한 미니멀리스트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