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가까이 지속되던 허리통증이 3월 중순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리가 아팠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로 말끔하게 싹 나았다. 야호! 신난다. 하고 싶은 것 이제 마음껏 해야지. 통증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체육관이었다.
"선생니이임! 저 다 나았어요. 이제 운동 마구 시켜주세요!"
"노노노! 회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회원님 마음은 알겠지만 재활부터 해야죠. 금방 재발합니다."
맞다. 몸이 그리 금방 나아지는 게 아니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팔랑대지 말고 전문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트레이너는 근육 풀기와 스트레칭으로 유연성을 보강하고 헐렁해진 코어근육부터 잡자고 했다. "네엡" 이라고는 했지만, 뛰든 무거운 것을 들든 어떤 식으로든 땀이 흠뻑 나게 운동하기를 바라는 내게 3주 동안 스트레칭만 시키는 것은 참 재미없는 일이었다. 스트레칭이란 뭐랄까 욕구를 속이는 가식적인 행동같아서이다. 마치 조숙한 숙녀로 보여야 하는 식사자리에서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양껏 먹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음식을 잘라 두어 개만 집어 먹고 배부르다는 듯이 포크를 내려놓는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밥을 먹기는 했으나 배가 몹시 고프고, 운동은 했으나 한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스트레칭을 제대로 하면 절대 이런 말을 하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내게 스트레칭은 약하다.
지루했던 재활의 시간이 지나고 예전의 운동패턴으로 복귀하자 만족감이 상승했다. 쪼그라든 근육들이 아직 제기능을 못하여 늘 들던 무게를 소화할 수는 없지만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다음 달부터는 아플 때 불어난 살을 빼기 위한 모닝조깅도 해볼 예정이다. 이대로 잘만 실천하면 올 겨울에는 바지를 좀 여유롭게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던 어느 저녁,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왼쪽 발목과 복숭아뼈 근처가 너무 아프다. 이건 뭐지? 뼈가 아프다 해야 하나? 신경이 눌린 아픔이라 해야 하나?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다 해야 하나? 아니 이 모든 게 다 뒤섞인 엄청난 강도의 통증이 발목을 짓눌렀다. 발을 잘못짚어서 그런 거 일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는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고통스럽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허리 아픈 거 저리 가라다. 방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다음날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의사는 '부주상골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발 안쪽에 체중 부하와 발의 아치 유지에 큰 역할을 하는 주상골(Navicula)이라는 뼈가 있는데, 이 뼈 안쪽에 부주상골(Acessory navicular)이 부가적으로 생겨서 통증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부주상골이 있는 경우 평발이 생기기 쉽다고 했고, 과격한 운동을 하는 경우 증상이 더 잘 발현한다고 했다. 부주상골을 제거해야 하고, 아울러 상당히 진행된 무지외반증 수술도 받으라고 했다.
“제 발이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가요?”
“환자분 발 상태로는 30분 이상 걷기 힘들 텐데요. 진료의뢰서 써드릴 테니 얼른 가보세요.”
정신이 혼미했다. 이런 우려스런 상태인 줄도 모르고 있는 힘껏 운동했고 더 힘껏 운동하겠다는 마음을 먹다니, 몸 상태를 점검하지 않은 내가 바보 같았다. 잠시 자책의 시간을 가진 후, 인터넷 검색과 지인들의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족부전문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진료를 받았다. 혹시나 다른 의견이 나올까 기대했는데 역시나 진단은 동일했고 마지막은 '수술하세요'였다. 수술 후 6주간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사정상 12월에나 수술할 수 있다고 하니, 의사는 그때까지는 아치를 받쳐주는 맞춤 깔창으로 통증을 잡아보자고 한다.
통증이 증폭되어 일반 진통제로는 완화되지 않아서 오늘은 동네 정형외과에 가서 발목에 진통 주사를 맞았다. 웬만큼 아픈 주사도 눈 하나 꿈뻑안하고 잘 맞는 나인데 이번 주사는 너무 아파서 의사에게 주먹을 날릴 뻔했다. 통증에 예민해져서 주사약이 더 아프다는 의사 말을 들으니 몸을 돌보지 않은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평생 쓸 내 몸을 왜 소중히 여기지 않았는지,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조금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일 걸,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통증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후회된다. 아까 의사에게 날리려했던 주먹은 내게 날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목, 허리, 발목으로 이어지는 계속되는 통증은 몸이 내게 소리치는 비명같다. 목디스크 뿐이었던 비명은 어느덧 허리와 발목까지 고통스럽다고 내뱉는 비명 3중창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 5중창, 7중창, 나중에는 합창으로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한번 몸이 내지른 비명은 소리가 작아졌다 커졌다 할 뿐이지 없어지지 않는다. 보물처럼 몸을 소중히 다루고 잘 살펴서 비명소리를 줄여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온마음을 다하여, 맞춤깔창이 이 뼈때리는 통증에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어휴, 정말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