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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꿀권리 Apr 28. 2021

엄마는 어려서 가난했어도 행복했을 것 같아요

돌아가신 부모님의 지혜

“OO아 애들 방학하면 할아버지 집에 오게 할 수 있냐? 중학교 올라가면 공부해야 해서 시간이 없을 텐데. 형제 내려 보내렴”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6학년과 4학년 두 아들은 학원도 다니지 않고 있어 방학에 시간이 많다. 아버지께서 이번 여름 방학에 두 손자를 데리고 있겠다고 하시는 이유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추억도 없는데 나중에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고 슬픈 감정이 있겠느냐? 는 것이다. 손자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버지의 제안이었지만 애들이 가겠다고 하고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둘이서 청주로 갔다. 

방학이 끝날 무렵 집으로 온다고 해서 터미널로 나갔다. 얼굴이 검게 그을리고 훨씬 건강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어땠어? 재미 있었어? “

“엄마는 어릴 때 가난했어도 행복했을 것 같아,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아서”

뜬금없는 첫 마디에 당황스러웠다. ‘재미있게 지냈구나’ 생각하고 다른 걸 묻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내내 할아버지 할머니와 낚시간 일, 계곡에서 신기하게 돌에 다 고기 구워 먹고, 매미 잡기 위해 매미채를 직접 만든 일 신이 나서 형제는 있었던 일을 서로 경쟁하듯 말했다.

“엄마 할 일이 많아서 책 읽을 시간도 없었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손자들에게 추억을 한아름 안겨주셨다. 낚시대도 직접 만들고, 예전 방식대로 고기를 몰아넣고 뜰채로 잡아 보기도 하고, 하루는 도구를 같이 만들고 그 도구를 가지고 들과 계곡에서 한여름을 신나게 놀았다.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것만 골라서 즐기고 온 것이다. 그후로도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낸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다.  

엄마는 형제가 너무 우애가 좋고 네가 잔소리하거나 간섭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며 키우기 수월하니 감사하라고 하셨다. 

두 분이 돌아가시고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팔기 서운해서 빈집으로 놔 누고 남동생들이 간간이 내려가서 둘러보고 자고 오곤 한다. 하루는 막내 동생이 낡은 편지를 하나 내밀었다. 아버지 집에서 발견했다면서 

큰 아들이 대입 수능을 마치고 힘들어 하던 때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였다. 

(중략)할아버지께서 그려 주신 그림은 잘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손수 그려보내 주심)

할아버지의 그림과 글귀는 항상 새겨보게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해 주신 격려의 말씀은 저에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2010년을 돌이켜보니 참으로 역동적인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고3시절. 저는 누구보다 즐겁게 공부했었고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며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현실적이었고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냉정한 평가를 앞에 두고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많은 생각 중에 한편으로는 제 꿈을 이루기에 대학은 한 낱 거치는 관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상황에 맞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도전해 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최선이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새로운 출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출발과정부터 안일 하다면 끝도 흐지부지할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 아닌 재도전의 마음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후략) 항상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세요. 늘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2011년 2.1 화 손자 OOO 올림

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때 부모님이 손자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지 않으셨다면 가장 힘들 때 이런 편지를 할아버지께 드릴 수 있었을까? 돌아가신 부모님께 삶의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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