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단골이 없어졌어요
“어머님이 살리셨군요”
맥을 짚어보던 한의사가 한 말이다.
맥으로 보면 장기가 약하고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이 아니다.
특히 소화가 되느냐고 물었다. 과식하지 않으면 잘 된다고 했다.
어렸을 때 몸도 약하고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입이 짧고 가리는 게 많아 늘 소식을 했다.
엄마는 20년을 똑같은 시간에 일정한 양의 밥을 주셨다.
내 생일날도 더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늘 똑같은 양을 먹었다.
이 얘기를 듣고 한의사가 한 말이다.
위장병이 생기면 제일 원칙이 정해진 시간에 일정량의 식사를 하는 것인데 엄마가 대단하다고 하셨다.
5남매를 키우시며 자식들에게는 한 번도 큰 소리를 치거나 화를 내시지 않았던 엄마는
아침밥을 단 하루도 소홀히 하신 적이 없었다.
휴일, 방학도 상관없이 365일 늘 같은 시간에 주셨다.
살림이 어려워져 생활이 힘들 때도 콩나물무침, 두부조림하나라도 아침에 새로 해서 주셨다.
요즘 아침밥을 안 먹는 사람도 많지만 나에게 아침밥 먹기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규칙이다.
전형적인 새벽형인 나는 아침밥을 안 먹고 점심때 가지 참고 생활할 수가 없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밥을 한다.
그러다 보니 시장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장소다.
아파트 입구에 있던 시장에서 매일 장을 봤다.
그곳에서 20년 넘게 살다 좀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도 그 시장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들리곤 한다.
시장 규모도 크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물건도 싱싱하고 다양하다.
낯익은 아주머니들이 장사하시는 그곳은 마음이 편하다.
그 근처를 지나갈 때면 습관처럼 들려서 1-2가지라도 꼭 사들고 온다.
3주 전에도 단골 야채가게에서 배추와 총각무 등 김치 거리를 사서 차에 싣고 왔다.
“김치 맛있지?” 아주머니가 물어서 묵은 배추를 사서 그런지 속이 상한 것이 한 포기 있었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다.
"배춧속을 알 수 있나?”하며 오이 값을 받지 않고 그냥 가져가라고 하시던 아주머니다.
오늘 시장에 갔더니 그 야채가게 자리가 텅 비여 있다.
‘응? 이건 뭐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옆 반찬가게에 물어보니 다른 사람이 할 거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한참을 텅 빈 가게를 보며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20년 넘는 단골 가게인데…. 먹먹했다.
배달하시던 주인아저씨가 어디 안 좋으신가? 도와주던 딸과 사위가 안 도와주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 고되게 일만 하시고 이제 나이도 있으시니 좀 쉬시려고 하나? 로또라도 맞아 그만 두시나?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매일 밥을 해 먹는 나에게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 그 야채가게는 보물 창고다.
무심하게 손님을 대하는 아주머니지만 먹는 대는 지장 없다며 덤을 주시곤 했다.
새로운 나물이 있어 요리법을 물으면 손님들이 사 가며 가르쳐 준거라고 일러주곤 했다.
시장 끝에는 개업 때부터 가던 미용실이 있었다.
15년을 한결같이 다른 곳은 눈길 한번 안 주고 원장이 직접 하는 곳이라 손이 바뀌지 않아 맘 놓고 가던 편한 곳이다. 그곳도 이사 오고 한 달 만에 갔더니 흔적을 다 지우고 김밥 집이 생겨서 말 못 할 허전함으로 멍하니 서 있었던 그때 생각이 난다.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는 기계음 때문에 더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단골 미용실을 찾지 못하고 지금도 이곳저곳 방황 중이다.
시장 안 가게는 그 자리에 오래오래 붙박이처럼 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그것도 아니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내가 알던 시장 사람들 얼굴들이 하나 둘 바뀌고 있다.
20년 넘게 드나들던 시장 가게 주인이 하나 둘 바뀌고 있다.
하긴 나도 30년 하던 일을 그만두지 않았나! 그들도 그 이상의 세월을 그곳에서 보낸 것이다.
마트나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 가면 물건 파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물건만 이리저리 살피다 집어오면 된다.
시장은 낯익은 아주머니와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보면 물건 담긴 봉지가 손에 들려 있다.
기다리던 봄나물을 사러 더 자주 갈 야채 가게인데.....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PS: OO야채 가게는 40년을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그 시장에서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