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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꿀권리 Mar 08. 2021

아이가 갖은 본래의 색이보이시나요?

엄마가 원하는 색으로덧칠하지 마요.



"선생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잘 지내시지요? 소연이와 수연이도 학교 잘 다니고요?"

"선생님, 그때 어떻게 소연이가 더 잘할 거라고  아셨어요? 신기하게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수연이와 소연이는 외모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다 달랐다.

언니는 엄마나 선생님이 바라는 전형적인 모범생의 모습이다. 옷도 엄마가 골라주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입는 듯하다.  아마도 동생은 그때그때 자신이 입고 싶은 걸 입는 듯하다.

엄마가 입히고 싶은 옷이 아니라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사달라고 할 것 같다. 

언니처럼 색을 맞추고 핑크색 레이스가 달린 옷을 입고 온 적이 없다. 

수연이는 책을 읽고 써온 글도 항상 일정한 분량을 채워오고 내용도  한결같다. 

엄마가 손을 봐주는 느낌이랄까? 예상되는 이야기에 읽는 재미가 덜했다. 

수업시간에도 항상 조용조용 애 어른 같은  이야기만 했다. 

친구들이 흔히 하는 불평도 하지 않고 늘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엄마는 자주  전화를 하거나 방문하여 아이들이 잘하고 있는지 묻곤 했다. 

수연이는 4학년이었는데 담임 선생님도 칭찬 일색이고,  학원 선생님들 마다 칭찬이 자자한 듯했다. 

그것을 은근히 내색하며 수연이를 칭찬해 주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나는 큰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를 힘들어할 것이고 성적도 지금처럼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지금 수연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며 노력하고 있다. 

더구나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 성격이라 주변의 요구에 잘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칭찬이 격려가 되고 동기가 된다기보다 점점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수연이는 칭찬을 듣기 위해 더 애써야 할 것이다.

 


소연이는 글도 2-3줄 만 써오고 내용도 항상 엉뚱하다. 엄마맘에 들 리가 없다. 

그러나 엄마도 어쩔 수 없어 손도 못 대고 있는 그대로 보냈을 것이다. 

수업 시간에도 언니처럼 차분하게 앉아 잘 듣는 아이도 아이다. 엉뚱한 질문도 많고 아이들도 잘 웃긴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소연이가 더 맘이 갔다. 그래서 엄마가 기대하는 칭찬을 할 수 없었다.  

동생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오히려 소연이는 걱정하지 마시라 지금 보다 점점 더 잘할 것이고  어리지만 엄마 맘대로 안 되는 아이다. 

글도 재미있고  수업 시간에 차분하지 않아도 그것이 딴짓하는 것은 아니다. 

차분히 앉아 있어도 머리가 산만한 아이들이 더 많다

지금 학교 공부 (받아 쓰기 , 수학 쪽지 시험)를 못한다고 계속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소연이는 선생님이나 엄마가 원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거의 안 쓰고 있을 뿐이다. 

수연이 칭찬을 듣는데 익숙하고 수연이 칭찬을 듣기 원하는 엄마에게 나는 소연이 얘기를 더 많이 하곤 했다. 엄마도 차분하고 조용조용 한 수연이 같은 딸을 원하고 수연이는 손이 안 갈 것이다. 

말광량이 삐삐 같은 소연이 때문에 걱정이 많고 자신과 너무 달라 버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저런데 앞으로까지 걱정하다 보니 엄마는 내 말이 전혀  들리지 않고 원하는 대답도 아니다.

그렇게 3년을 가르치고 엄마는 학군 때문에  이사를 갔다. 그리고  3년 만에 만난 거다. 

수연이는 열심히 하는데 초등학교 때처럼 잘하지 못하고 걱정 투성이었던 소연이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온통 아이들의 공부에만 관심이 가 있다. 

그동안 아이들도 많이 변해 있을 것이고 안 본 공백도 길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이번에는 수연이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이 근심이 가득하다. 

자꾸 선생님은 어떻게  소연이에 대해 아셨냐고 물어보시는데 해줄 말이 없다. 

이번엔 소연이 칭찬이 듣고 싶으신 듯하다.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단정 지을 존재가 아니다. 

소연이는 유화 그림의 빨간색  장미 같은 아이고, 수연이는 파스텔 그림의 연한 핑크색 솜사탕 같은 아이다. 그런데 엄마가 자꾸 색을 덜어내 둘 다 흰구름으로 칠하려고 하니 엄마도 힘들고 아이들은 자신의 색마저 덜어내고 있다.   

엄마가 원하는 색으로 덧칠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보고 싶은 색으로 되고 있다고 믿는다. 


어른들은 바나나 우유를 노란색으로 포장하고 바나나 우유라고 모두 동의했다. 

잘 익은 바나나 껍질색만을 바나나 색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바나나 우유는 하얗다 "라는 광고 문구가 생겼나? 아이들은 나무에 매달린 초록색 바나나일 수도 흰 속살을 드러낸 바나 나일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이 상상하는 빨간색 바나나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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