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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꿀권리 Feb 25. 2021

30년을 일한 후 인생 후반기에 닥친 위기


"엄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행복한 것예요"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나에게 해주던 말이다. 

나는  적성에 맞고, 하는 일이 일이 좋아 30년을 지루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해왔다. 

그런데 친구 딸 결혼식에서 갔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30년이 지나서 처음 본 친구들 여럿을 만났다.

그들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혹스러웠다.

이미 중년이라고 하기도 어색한 늙어가는 외모와 말투에서 나 자신이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과 책 읽고, 이야기를 하며 꼰대짓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선생님으로 잘 살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더구나 귀여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까지 가르치며 지루할 틈도 없었다. 

함께 웃어주고 고민을 잘 들어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상담을 왔을 때 나를 보고 지금 내가 30년이 지난 친구들을 보면서 낯설어 하듯이 

마뜩잖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다음날 학원에 출근하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손때묻은 책들,   

30년간 모아온 자료들.  

그리고 20년 가까이 함께 한 내 책상, 이들을 하루아침에 멀리할 수 있을까? 

손뼉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런저런 갈등을 했다.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일을 좋아했고, 

만약에 그만두더라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거 같다. 

대학 졸업 후 아들 둘을 낳으며 2달 정도만 쉬었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몇 달 후 나는 학원을 미련 없이 접었다.

그 많던 책을 복지관과 시설 등에  기증하고  낡은 책은 폐기했다.  

기증한 책이  열배 스무 배 더 많은데 폐기처분하는 책을 본 경비 아저씨는 이렇게 많은 책을 버리는 학원은 처음이라며 너무 놀라워했다.  

자료를 남겨 두면 미련이 있을 거 같아 다 버리고 빈 몸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제2의 인생 이모작을 하겠다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다음 해 여름  대학생 아들은  정말 열심히 일만 한 엄마라며  나에게  유럽 여행을 제안했다.

난생처음 (일의 성격상 동남아만 3박 4일 정도 다녀옴) 둘이서 자유여행으로 30여 일을 함께했다. 

학원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다. 

만약에 20대에 이런 여행을 했다면  엄마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들에게 여행 소감을 전했다.  

처음으로 생긴 시간적 여유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30년 노하우와 교육철학이 담긴 책을 출간했다. 

그러면 이제 강의도 더 많이 들어오고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강의를 몇년간 안하는 사이 이미 환경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30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도 현장을 떠나니

다시 리셋이 되고 일을 안한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오던 부모 교육도 어쩐지 어정쩡한 것 같고 그렇다고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는 부족했다. 


30년간 아이들 독서, 논술, 국어, 자기주도 학습 멘토를 힘든지 모르고 한 것도 

내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지만, 

30년을 전문가라고 자부했던 경력도 중단하게 되니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경험은

또 다른 놀라움이었다. 

책을 알릴 공간도 만들어 놓지 않고 출판사가 내 원고를 선택했으니

알아서 다 해줄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누가 알아주던 시대가 아니라 나 자신을 브랜딩하고,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알고 있는 지식에 깊이를 더하고,

새로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하고,

새로운 것들을 (환경, 기능, 사고 등)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내가 잘 하던 강의도 비대면 시대에 맞춰 적응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를 사람들이 필요한 형태?로 생산해 내지 않으면

30년의 경험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 위식으로 다가온다.  

인생 2모작을 무난하게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했다

일에 대한 갈등이 없고, 잘해 온 것이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고  고민을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동안 매우 열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성격과 태도도  사실은 범생으로 평범하게 살아온 덕분에? 

루틴대로 정해진 일을 열심히만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처음으로 깨닫게 됐다. 

주변에서 너무 열심히 하고  대단하다고 해서  그런 줄로 알았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기에 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눈을 돌려  다른 가능성에 대해 갈등하고 고심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요즘 SNS를 조금씩 하면서 참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당장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열정에 새로운  자극을 받고, 

자신의 앎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덕분에 배울 수 있어 다행이다.


 조금은 느리지만 기쁜 마음으로 하나하나 배우고, 실행하며, 

1년, 2년 후  나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을 알게  됐다.  




 


   








#30년일하고닥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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