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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꿀권리 Jan 31. 2022

아들이 준 봉투

아들이 준 봉투


작은 아들이 취업을 하고 첫 월급을 받았다. 저녁도 자신이 사겠다며 예약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들은 준비해온 봉투를 3개 꺼냈다. 

“교육생이라 생각한 것 보다 적어 많이 드리지 못했습니다.” 

남편과 나에게 따로 준비한 봉투를 건 내고 형에게도 봉투를 준다. 형은 당황하며 왜 나에게도 주냐 고 했다. “형, 많지 않아 과자나 사 먹어”

응? 왜 형에게도 주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형이 그동안 나에게 준 게 많아서 과자 값 이야”

큰 아이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다. 두루두루 고마움을 표하는 작은애가 대견했다. 



3년전 큰 아이가 첫 월급을 타고 봉투를 주었다. 

“그동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항상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000올림

지금도 봉투에 든 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쓰고 나면 손에 들고 있던 풍선을 날려보낸 아이처럼 허망할 것아 봉투와 함께 간직하고 있다.  

난생 처음 아들에게 돈이 든 봉투를 받아보고 한참동안 멍했다. 아들이 돈을 벌고 용돈을 준다는 것이 신기했다. 받는다는 게 왠지 쑥스럽고, 아들의 몫을 빼앗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 자식이 돈을 버는데도 자기 것만 사고 챙겨주는 게 하나도 없어서 서운하다고 한다. “네가 아직 돈을 버니까 그러겠지. 애들이 힘들게 번 걸 나눠 달라고 하니?” 이렇게 말하는 나는 아직은 진심이다.




나는 아직도 받는 것이 멋쩍고 자연스럽지 않다. 

시간이 지나 주는 아들도 관성적으로 건 내고 받는 나도 별 느낌이 없어지면 무엇이 남을까? 지금은 받기도 쑥스럽고, 신기하고, 고맙고, 대견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심정인데 그냥 덤덤하게 받는 날이 온다면… 아들과의 관계가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의무감과 당연함만 남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들은 약간의 의무감과 연민으로 나에게 봉투를 건네고,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당연하게 받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황망할까? 

 우리 세대는 부모를 물질적 시간적으로 부양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지만 지금의 MZ세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늘어난 노년기간과 달라지고 있는 부모와 자식이 관계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달라지고 있는 명절 풍속도와 함께 적응이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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