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 정말?
“내 자식은 속이 터져서 못 가르치겠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고등학생 아들을 가르쳐요?”
사춘기 아들과 대화도 안 되는데 어떻게 아들을 가르치냐고 아들에 방점을 찍는듯한 질문을 받곤 했다.
중, 고등학생만 가르치다 초등 독서를 준비했다. 고등학교 때 학원을 많이 다니고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고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아들들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큰 아이가 초등 2학년 때부터 고3까지 같은 팀에서 수업을 했다. 작은 아들은 초2부터 고1까지 팀으로 수업을 했다. 작은 아이는 이과로 방향을 정하고 이과 논술과 이과 공부가 비중이 많아져서 그만두었다. 다행히 국어를 좋아해서 수능 국어는 혼자 공부해도 잘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놔서 고3까지 가르치지 않아도 안심을 했다.
아들들을 위해 초등학교 독서 논술 수업을 시작했기에 원칙을 세웠다.
나에게 배우는 아이들 보다 아들에게 잔소리를 더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아이 입장에서 잔소리를 더 들을 이유도 없고 그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숙제할 시간이 충분한데 안 하고 빈둥거려도 숙제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학원을 안 다니기 때문에) 설령 수업 전 날에도 숙제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잔소리를 하게 되고 다른 아이들은 숙제를 안 해오면 수업 시간에만 민망하면 되는데 우리 아들들은 더 많은 잔소리와 확인을 받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애들 앞에서 나의 체면? 때문에 더 민감해지고 미리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가르치며 꼭 지킨 첫 번째 기준이다. 중, 고등 시험 때도 따로 국어 시험공부를 시킨 적이 없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시간에 시험공부를 하고 거기에 맞춰 시험공부 스케줄을 짜고 해결하라고 분명한 기준을 처음부터 합의했다. 아들이 중2 때 숙제를 안 하고 수업에 임했다. 다른 아이보다 더 길게 지적 질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아뿔싸 “어제 숙제할 시간 있었는데 안 했네!” 이 말을 해 버렸다. 그때 아들은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하며 수업 시간에 나갔다.
아들은 ‘ 다른 아이들은 사정이 있어서 숙제를 못해왔냐고 물으면서 나한테는 엄마 맘대로 안한 이유를 생각하고 애들 앞에서 말하느냐"라고 차별이라고 했다. 아들 말이 맞다. 기준을 내가 먼저 어기고, 아들은 다른 아이들이 듣지 않는 잔소리를 부당하게 들은 것이다.
엄마가 자기 자식을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는 잘하는 건 당연하고 남들보다 못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들과 수업하는 팀에는 전교 1등 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두 학교로 배정이 달라짐)
그래도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아들도 나에게 미안해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다.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엄마들은 독서 수업을 하니 엄마랑 수업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한다. 영어, 수학은 오직 성적이 중요하니 신경이 예민해져서 가르치기 힘들다고 한다. 독서 수업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선생님인 내 생각도 이야기해야 한다. 사춘기 아들이 그게 자연스럽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는 수업이다. 독서 선생님 중에 자식을 고3까지 가르치는 선생님은 의외로 드물다. 내가 이 내용을 첫 책 〈곰 부력이 완성되는 초등 독서의 힘〉을 출판사에 투고할 때 보냈다. 담당자는 이 내용 때문에 원고를 출간하려고 한다고 하셨다. 아내가 수학을 가르치는데 딸과 매일 싸운다고 하면서 책으로 나와서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무튼 내가 독서 지도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과생인 큰아들이 대학 리포트 주제가 나오면 갑자기 추천 책 좀 알려달라는 톡을 받을 때고, 작은 아들이 일 년에 한두 번이지만 요즘 읽을 만한 책 좀 추천해 달라고 할 때다. 큰 아이는 이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지 않지만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제목을 이야기해준다. 아들이 이야기하는 거 보고 관심이 가면 나도 읽어 본다. 아들과 대화가 되는 건 10년간 함께 책 읽고 생각 나누기를 한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