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꿀권리 Sep 07. 2023

네이버에 고침으로 나오는 내 이름을 사랑한다.

나를 성장 시킨 8할은 이름이다.

네이버에 고침으로 나오는 내 이름을 사랑한다. 

     

글을 쓰고 네이버 맞춤법 검사기에 넣으면 내 이름 밑에 이선균으로 바꾸라고  빨간 줄이 그어진다. ‘그래 네이버는 다 아는 줄 알았더니 아직 내 이름을 모르는구나!’ 나도 그 배우에 대해 관심 없었는데 (그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기생충’을 통해 나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처음 내 이름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남자 이름이네요’ ‘얼굴 안 보고 이름만 들었을 때 남자인줄 알았어요.’ ‘이선균 배우랑 이름이 같네요’ 가 가장 많다. 요즘은 가끔 ‘남자 이름이 잘 살데요’ 이런 말도 한다. 결론은 남자 이름이라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남자 이름이라고 단정 짓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선균 보다 내가 먼저 불린 이름인데....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아이를 낳기도 전에 5명의 손자 이름을 다 지어 놓으셨다 . 균자가 돌림이니 가운데 들어갈 이름을 인, 의 , 예, 지,신을 미리 찜해 놓으셨다.

내가 첫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혼자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인(仁) 자가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시작인데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 되는 딸에게 인자를 사용하기가 흔쾌히 내키는 일은 아니셨던 것이다. 

할아버지 계획이 빗나갔다. 그런데 몇 며칠을 살펴보니 내가 순해도 너무 순하고 울지도 않고 마치 할아버지를 보며 웃어주는 것 같더란다. 그래서 착하디착한 우리 손녀에게는 착할 선(善)자가 떠올라 선균이라는 지으셨다. 그러면서 아들 딸 차별한 거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그 시대에 여자에게 돌림자를 넣다니' 이런 반응인데 손녀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가 좋았다.

할아버지는 그게 맘에 걸리셨는지 아니면, 착한 내가 예쁘셨는지, 시향 (시제)에 가실 때 

꼭 나를 데리고 가셨다. 당시 여자들은 제사에 참석도 못하게 하는데 하물며 문중 어른들이 모이시는 시향에 가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차례를 지낼 때도 늘 할아버지 바로 뒤에 서서 절을 올리고 

제사밥을 할아버지와 함께 한상에서 먹곤 했다. 

할아버지는 바로 남동생보다 내가 첫 손자라고 하시며 더 귀여워하셨다.  


     


당시 출석부에는 영숙이, 미숙이 영희 같은 이름이 꼭 2명씩 있어서(한반에 60명이 넘어서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작은 영숙이 큰 영숙로 불리곤 했다. 

같은 이름이 없어서 외롭지도 않고, 남자 이름 같더라도 나는 내 이름이 좋았다.

지금도 이름을 불러주다 보면 두세 번 확인 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좀 낯선 이름이지만 나는 내 이름이 좋다. 

나를 성장시킨 것은  이름이 8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무척이나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이 많던 나를 나의 특성을 지켜보시고 적절하다고 생각한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이 있다. 시어머니가 꼬투리를 잡을 때에도 나는 ‘우리 딸처럼 착한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이름에 빗대어 말씀해 주시던 울 엄마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착한 것은 순종하며 복종에 가까운 며느리였겠지만 울 엄마가 생각하는 착함은 달랐다) 




사전에 의하면 “선(善)은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또는 그런 것.도덕적 생활의 최고 이상.“  

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름이 담고 있는 경지까지 이르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함이 순하고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신 부모님 덕분에 사람들의 착하다는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시고, 부모님이 소중하게 불러주시던 나의 이름을 사랑한다.    

작가의 이전글 옷 잘 입는 사람과 공부 감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