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는 연예인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 어디 괜찮은 회사 구인공고 올라온 것 없나 오늘도 어김없이 구직 사이트와 인터넷 카페를 뒤적이고 있던 어느날. 하지만 여전히 맘에 드는 회사는 보이지 않는다. 연봉이 괜찮다 싶으면 회사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안 들고, 회사 포트폴리오가 좋다 싶으면 연봉이 적다던지 소문이 안 좋은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밤샘과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던지...월급이 밀린다던지..등등)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하나가 괜찮으면 다른 하나가 마음에 안 들었고 내가 이전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회사는 하나같이 구인중이 아니었다. 하다 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홍보영상제작, 영상 전문업체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며 혹시 내가 몰랐던 괜찮은 회사가 발견되지 않을까 찾아보던 찰나에 어떤 웹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회사들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도대체 이건 뭘까...?
자세히 살펴보니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고, 영상 제작자(프리랜서)와 영상을 의뢰하고 싶은데 어디에 맡겨야 좋을지 모르겠는 클라이언트를 연결시켜 주고 중간에서 커미션을 받아가는 마켓플레이스 형태의 업체였다.(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프리랜서 마켓사이트인 크몽의 영상 특화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다가 사이트 이곳저곳을 뒤져보며 속으로 외쳤다.
그때 당시만 해도 이런 중개사이트가 많지 않았고 특히 영상 분야에만 특화된 사이트는 처음이었다.
일단 프리랜서로 등록해야 의뢰된 프로젝트들의 목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만들었던 포트폴리오의 링크를 첨부해 프리랜서 등록부터 했고 곧바로 올라온 프로젝트들을 살펴봤다.
쭈욱 둘러보니 그 당시 내 기준에 한 달 월급 정도, 또는 그 이상 받아갈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이 사이트에 등록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프리랜서로 등록했지만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프리랜서를 할 생각이 1도 없었다.
그냥 등록된 프로젝트 중에 괜찮아 보이는 몇 개를 선택해 지원을 해보고 되면 일단 한번 부딪쳐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만일 컨택이 돼서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면 돈도 벌고 포트폴리오도 쌓이고 그야말로 1석2조가 아니겠는가!
생각만 해도 설레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솔직히 두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그냥 내가 가진 포트폴리오만으로도 이런 프로젝트에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설레임과 희열을 느꼈다.
뭐 일단 지원해보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지.
그 당시 총 3개의 프로젝트에 지원을 했다. 나의 프로필을 정성스럽게 작성하고 그동안 학원에서 만들었던 영상 포트폴리오를 업로드했다. 그러고 나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당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도 없었고 그동안 집에서 가만히 노느니 뭐라도 해보잔 심산이었겠지.
마켓 담당자 - 안녕하세요~ 여기 땡땡땡 사이트입니다. 누구씨 맞나요?
나 - 네 맞습니다!
마켓 담당자 - 네, 지원해주셨던 애플리케이션 홍보영상 제작자로 컨택이 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다음 주에 클라이언트와 함께 미팅 가능하실지 확인차 연락드렸어요
나 - (속마음을 감추며 최대한 태연하게) 아 그래요? 네 물론 가능합니다. 언제 어디서 뵈면 될까요?
마켓 담당자 - 네, 그러면 제가 클라이언트 분과 얘기해보고 정확한 날짜와 장소 및 시간 정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 -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을 때렸다가 통화기록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몇 분간 통화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다.
현실이란 걸 깨닫는 순간 날아갈 듯 너무 기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아무런 경력도 없는 나에게 이런 기회가 생긴 걸까? 내 포트폴리오가 나쁘지 않았던 걸까?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챃았던 걸까? 그 당시 클라이언트들이 동시에 마음에 들어했던 한 영상이 있다.
영상 학원에 다니면서 한 달 동안 진행했던 1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그 프로젝트는 실제 있는 브랜드를 선택해 직접 브랜딩하고 최종 영상까지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때 "밴드 오브 플레이어스"라는 컨템퍼러리 패션 브랜드의 브랜딩과 영상제작을 진행했다. 물론 그냥 우리끼리 학원 안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이다.
(슬픈 이야기지만 현재 이 브랜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브랜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야 영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당시 해당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나는 현재 영상학원의 학원생이고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혹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연락드렸다면서 브랜드에 관한 자료를 받을 수 있을지 문의했다.
담당자는 그런 내가 신기했는지 줄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메일로 보내주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만들었던 영상을 그 담당자의 메일로 첨부해 보내드렸다. 당신이 보내주었던 자료 덕분에 이런 영상이 만들어졌다는 나름의 고마움에 대한 성의표시였다. 그런데 그 이후 아주 기분 좋은 일이 벌어졌다.
프로젝트 종료 후 어느 날, 담당자에게 메일 한통이 날아왔고 내가 보내준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 자사 네이버 블로그에 영상을 업로드했다는 소식이었다. 응?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그냥 학원 프로젝트로 과제성의 영상을 만들었을 뿐인데 이걸 블로그에 올리다니...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영상으로 뭔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 앞선 글에 소개를 했지만 이렇다 할 디자인과를 다닌 적도,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오직 이 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것만 가지고 만든 첫 번째 영상이 실제 회사의 블로그에 소개된다는 게 믿기지도 않을뿐더러 나의 자존감을 크게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 브랜드 회사에 직접 연락했다는 것.
그냥 진행해도 되었을 프로젝트였는데 굳이 회사에 연락을 해 자료를 요청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도, 무례할 수도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최대한 정중히 나의 상황을 설명하며 부탁을 했고 결국 그때의 연락으로 인해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내 영상을 보내주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두 번째. 고마움에 그치지 않았던 나의 피드백.
그쪽에서 보내준 자료를 받았다면 과연 끝일까? 물론 끝일 수도 있다. 요청을 했고, 피드백이 왔다. 그걸로 끝인 거다. 아마 그 담당자도 자료를 보내주고 나란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상이 완성되고 프로젝트가 종료되자마자 바로 담당자 메일로 영상을 보내주었다. 담당자는 영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블로그에 게재를 했다. 바로 나의 소개와 함께. 그걸로 끝이 아니라 자사 블로그에 게재했다면서 직접 연락까지 준 고마운 사람이다.
"바로 자기 PR의 중요성. 프리랜서는 적당히 유명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냥 그런 학원의 과제물로 만든 영상으로 끝날지, 좀 더 세상에 나가 빛을 보게 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귀찮다고 차일피일 만들어둔 영상을 유튜브나 비메오 등 여러가지 채널에 올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영상은 나만 보게 되는 개인작업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작품에 확신이 있다면 최대한 세상에 널리 알리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그 작품이 별로일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리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아주 잘 맞다고 판단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다. 결과적으로 학원생의 신분으로 첫 번째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실제 회사의 블로그에 게재하게 되는 행운을 겪었으니 말이다.
( 물론 결과물이 좋지 않다면..수정 보완을 해서 올리던지, 아니면 그냥 하드에 짱박아 두는게 속편하다. )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기회가 없으면 먼지만 쌓이기 마련이다.
우리 스스로를 홍보하고 작품을 알린는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유명세는 연예인들에게만 중요한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