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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프리랜서 May 07. 2020

#4. 단 한 사람의 박수갈채일지라도.

득과 실의 오묘한 경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처음의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마켓 담당자로부터 앱 프로모션 영상의 제작자로 선정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 며칠이 흘렀다.

광화문의 스타벅스에서 마켓플레이스 담당자, 클라이언트와 함께 프로젝트에 대한 미팅을 가졌는데 담당자와 30분 정도 먼저 만나 선미팅을 했다.


우리 또한 서로가 첫 미팅이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약 30분간 서로에 대한 자기소개를 하고 마켓플레이스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들었다.

그런 후 계약방식과 미팅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조언을 듣고 나서야 클라이언트를 만났다.

처음이다 보니 설렘과 동시에 긴장이 되었다.

그때 멀리서 한 남성분이 걸어오셔서 우리 앞에 앉으며 본인 소개를 하셨다.

당시 클라이언트였던 대표님의 첫인상은 겉으로 보기에 나이는 40대 중반~50대 초반의 남성으로 나이가 꽤 있어 보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던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당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 붐에 합세해 작은 스타트업을 차린 대표님이셨다.

굳이 나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그 당시 창조경제라는 슬로건 하에 정부지원사업이 꽤 활발했는데,

주로 IT 관련학과의 유명대학 재학생 또는 졸업생들이 스마트폰 앱 개발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 스타트업을 차리는 일이 많았다.

또 앱 개발 이후 홍보를 위해 정부지원을 받아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회사들이 있었는데 나 역시도 그때 당시 여러 스타트업 업체의 영상을 제작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대표님은 사실 겉으로 봐서는 it와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그냥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대표님의 회사 및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이 프로젝트를 맡았던 시기가 2014년 여름.  

2009년 말 애플 아이폰이 처음 한국에 처음 출시되고 삼성에서 공격적으로 갤럭시 시리즈를 내놓던 시기+정부에서는 창조경제다 뭐다 스타트업 육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때였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스마트폰의 기본 키보드 대신 여러 가지 나라의 언어로 된 키보드를 깔아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스마트폰 키보드 앱이었다.

준비해 간 노트와 필기구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필기했다.

이 분은 나에게 무려 작업비라는 명목 하에 삼시 세 끼와 함께 품위유지를 할 수 있는 돈을 주시는 클라이언트님이 아니던가.

프로젝트에 대한 콘셉트와 대략적인 작업 스케줄을 픽스한 뒤 간단한 인사와 함께 헤어졌고 드디어 나에게 첫 번째 프로젝트라는 막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자. 이제 드디어 시작이다. 


회사 소속이 아닌 온전히 혼자서 돈을 받고 진행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아주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레퍼런스는 많았고 학원에서 배울 때 단순히 툴만 배운 게 아닌 기획부터 제작까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혼자서 진행했던 것이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단순 작업자가 아닌 기획력도 겸비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그 학원이 목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이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끌고 나갈 수 있게 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미팅 후 레퍼런스를 찾아 기획을 하고, 스토리 구상부터 내레이션 작성을 해서 보내고 나니 시작부터 순조로운 게.. 이 프로젝트 아주 수월하게 진행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키보드 버튼으로 사람 형상을 만든 다음, 춤을 추듯 움직이게 하고 키보드 버튼으로

다시 재배열되는 영상은 어떨까요?"


실제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내가 받았던 한 피드백의 내용이다.

저 피드백을 받았던 순간 처음에는 그냥 뭐지 싶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현실적으로 키보드 버튼이 사람 형상이 되려면 셀 애니메이션 방식처럼 수십 장의 그림을 그려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 대표님은 우리가 만드는 영상이 모션그래픽을 이용한 프로모션 영상이라는 것을 잠시 잊은 채 애니메이션과 혼동을 하신 게 아닐까?

그때 당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다.

이 분의 상상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무슨 생각으로 이런 피드백을 주셨던 걸까?

나를 마치 자신의 직원쯤으로 생각하고 너무 편하게 얘기하시는 건가?

그런데 프리랜서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나니 깨달은 결론이 있다.

사실 더 일찍 깨달아야 했다.


사람이 모르면 그럴 수도 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떤 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그냥 아예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내 일만 잘하면 되지 굳이 다른 분야까지 알 필요도 없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일단 막 던지고 보는 거다.

이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한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좀 더 좋아 보이게 포장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니

진행방식이야 어떻든 일단 아이디어를 던지고 보는 거다.

그러다 보니 기상천외한 것들이 나오기도 하는 거고...

예전에 한 IT회사의 디자이너로 2년간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업무는 회사 내부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또는 앱 개발에 필요한 내부 디자인들을 주로 작업했는데 그 당시에도 개발자들과 소통이 안되면 서로가 그냥 쉽게 되는 줄 알고 이렇게 저렇게 해주세요 하는 요청들을 생각 없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 또한 개발자들의 업무를 모르니 똑같이 요청을 했던 경우도 많았고.

결국은 서로 간의 소통이 있어야 최대치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솔직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받는 예산안에서 최대치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게 내 일이지만,

그 이상의 것이 요구사항으로 들어왔을 때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프로젝트 내내 클라이언트에게 끌려다녀야 한다. 이건 그냥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결국 솔직하게 대표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까지 표현하려면 저희가 가진 예산이나 시간으로는 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콘티를 짜면서 다른 아이디어를 내 볼 테니 콘티 나올 때까지 일단 한 번 기다려주시면 어떨까요?"


다행히 대표님도 오케이 하셨고 결과적으로 완성된 콘티를 보고 아주 흡족해하셨다.

물론 그만큼 저분이 원하는 기대치가 있으니 고민을 무척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그 이후부터는 사실 디자인의 영역이다 보니 컴퓨터로 컬러를 입히고 애니메이션 완성까지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컨펌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다 보니 쓸데없이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받을 필요도 없어서 둘이서만 소통할 수 있는 부분도 장점이었다.

( 마켓플레이스의 역할은 첫 미팅에서 끝났다. 이후 모든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와 나, 둘이서만 진행하고 이메일에 참조로 달아주는 정도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첫 영상이 마무리되고 희한하게 만나서 최종본을 확인하고 싶다는 대표님의 말에 우리는 충정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노트북으로 완성된 영상을 함께 시사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카페에서 민망하게도 대표님은 아주 기분 좋게 웃으시며 박수를 치셨다.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시면서 해주실 수 있는 모든 칭찬은 다 받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수정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완성으로 수정 없이 프로젝트가 끝난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 몇 번이나 나를 귀찮게 하시긴 하셨다..)


그렇다면 스스로는 어땠을까? 이 프로젝트가 만족스러웠을까?


내 입장에서는 반반이다.

물론 영상 자체는 스스로도 만족스럽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영상만 만든 게 아니라 이 애플리케이션의 아이콘 디자인부터 키보드 디자인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뭔고 하면..

보통 회사나 브랜드, 제품의 영상을 만들 때 로고 활용을 많이 한다.

로고의 컬러라던지 쉐잎 등을 활용하기도 하고 마지막 엔딩에는 로고로 마무리를 하는 게 보통 정석이다.

당연히 애플리케이션 홍보영상이면 중간이든 마지막에든 앱 아이콘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 당시 앱 아이콘이나 키보드 디자인조차도 제대로 완성이 되지 않은 목업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영상의 퀄리티를 위해 직접 앱 아이콘과 키보드 디자인까지 맡아서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디자인했던 앱 아이콘 시안들


결과적으로 영상에 대한 페이만 받고 앱 아이콘 디자인과 앱 내부 디자인까지 일부 하게 된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면 저 부분에 대한 페이를 추가로 요구를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제 막 프리랜서가 된 초짜였으니 그 부분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중간에 커미션을 가져가는 회사도 껴있었으니 참 애매했다.

사실 저런 부분들은 마켓플레이스에서 컨트롤해줬어야 하는 부분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져가는 커미션에 비해 참 하는 일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수수료의 비율은 여기서 밝히기는 좀 어렵지만 생각보다 많았고 결국 그 회사와의 인연이 오래가지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프로젝트는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끝이 났고, 대표님은 만족스러운 영상과 앱 아이콘 디자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얻으셨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러운 영상을 얻은 대신 앱 아이콘 디자인이라는 추가 노동력이라는 것을 지불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반의 목소리였던 셈이다.

어쨌든 이렇게 처음부터 교훈을 얻었으니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쉴 틈 없이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이유는 처음에 지원했던 프로젝트가 모두 성사가 되어서 3개의 프로젝트를 맞물려가며 거의 동시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한 개는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과연 나머지 2개의 프로젝트도 무사히 끝이 났을까?



https://youtu.be/MDNcHsuy-go

키보드 앱 무빙 키 프로모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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