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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n 11. 2024

I see you.

눈빛은 영혼을 담고, 눈빛은 영혼을 조각한다.

사람은 다양한 눈빛을 가졌다. 다정한 눈빛, 매서운 눈빛, 아련한 눈빛, 독을 품은 눈빛. 그 외에도 수천만 가지 눈빛이 있다. 얼굴도 그대로고 눈 자체도 그대로인데 눈빛은 어떻게 해서 달라지는 건지 신기하다. 눈빛에는 에너지가 담긴다. 감정이 담기고 혼이 담긴다. 보이지 않지만 나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담긴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나라고 여기는 이름, 성별, 몸, 생각. 그 어떤 것도 사실은 내가 아니고 오직 눈빛만이 나의 진실이라는 생각. 왜냐하면 눈은 절대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웃으며 입으로 달콤한 말을 뱉어도 나의 눈은 절대 진실을 속일 수 없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의 육아서인 『천일의 눈 맞춤』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존재는 응시에 의해서 조각된다." 


말을 배우기 전 아기는 엄마와 몸으로 소통한다. 촉감을 느끼고 눈을 응시하며 세상을 배운다. 그 시기 어떤 감각을 느끼느냐에 따라 자신이 온 이 지구라는 별이 좋은 곳인지 그렇지 않은 곳인지 해석하게 된다. 그 기억은 세포에 저장된다. 뇌가 아닌 몸 그 자체가 기억하는 것이다. 언어가 아닌 에너지로 받은 말들. 우리는 모두 그 진실의 말로 길러졌다. 다정한 눈맞춤은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시키고 감정적 유대감을 증대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면서 마음이 열린다. 위협의 느낌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눈길을 받으며 살았는지, 어떤 눈길을 주며 살았는지가 내가 사는 세상을 스스로 정의하고 있다. 세상과 내가 나눈 눈의 대화들. 받았던 눈빛, 보냈던 눈빛이 어디로 어떻게 가서 쓰였는지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상대의 시선은 나의 어디로 가서 살아남아 있으며, 나의 시선은 상대의 어디로 스며들어,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타인과의 소통은 눈을 바라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서로의 눈을 맞추며 "I see you."라고 말한다. 아프리카 줄루족은 '사우보나(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인사에 '응기코나(내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화답한다. 이들의 인사를 보면 하나의 눈이 또 다른 어떤 눈과 만난다는 것은 거대한 일이다. 단순히 쳐다본다는 의미를 넘은 존재와 존재와의 만남인 것이다. 그 사람이 여기 있음을 온전히 자각하는 눈 맞춤. 눈과 눈으로 서로가 '있다'라는 명징한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천일 간 누군가를 진심 어린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아마 그 사람은 어떤 고통에 있든 다시 회복될 것이다. 

누군가를 천일 동안 바라봐 줄 수 있다면 그 첫 번째는 내가 될 것이다.


거울을 본다.

나를 본다.

내가 나의 눈을 바라본다. 

내가 있고, 나를 보는 내가 있다.

그 순간 눈물이 나고 모든 것이 이해된다.

내가 나를 그렇게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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