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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n 10. 2024

사랑의 대물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엄마 품속

나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덕분에 애들 어릴 때 어디를 가도 어르신들에게 위로를 듬뿍 받았다.


"우짤꼬... 아들만 둘인가베."


도대체 이 세상의 아들들은 모두 어떻게 컸길래 온 어머니들이 아들 가진 여자만 보면 측은해할까. 어떤 기준으로 아들만 가진 여자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걸까. 내가 측은 한 게 아니라 과거에 젊은 엄마였던 자신이 측은한 걸까. 나는 어차피 딸을 안 키워봐서 비교 대상이 없다. 내 과거로 딸 가진 삶을 추측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리 살갑고 기특한 딸이었다고 느껴지진 않기 때문에 자식은 아들이나 딸이나 그냥 거기서 거기다. 자식이라는 독립적인 인격체는 어차피 부모 말이 아니라 자기 말을 들으며 살아갈 것이고, 무탈 외에 바라는 게 없다면 모든 자식은 훌륭하다. 아무튼 알 수 없는 오묘한 위로의 말을 곳곳에서 들으며 살아야 했다. 


자식 낳아 무슨 덕을 바라지도 않는다. 체력적으로 좀 부대끼긴 하지만 친구 딸이 자기 엄마한테 감정 토로하는 꼴을 보고 나서는 가끔 아들 키우기가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다. 다른 건 모르지만 아들 키울 때 한 가지 힘든 점이 있긴 하다. 절대로 멀리서 얘기하면 내 말이 귓구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접 찾아가서 눈을 보고 얘기하거나 손잡고 직접 끌고 가야 말을 듣는 귀찮음이 있긴 하다.




이제 첫째는 5학년, 둘째는 2학년이다. 언제 저렇게 훌쩍 컸나 싶어 신기하다.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가끔 말로 그렇게 표현도 한다. "잘 커 줘서 고맙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지난 과오는 미안하다." 아이들을 사랑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칭찬이거나 내가 마음 편하려고 하는 사과다. 더불어 좋은 기억은 더 많아지고, 나쁜 기억은 되도록 흐려지면 또 좋은 거고. 일종의 진심 더한 술수다.


요즘 첫째가 부쩍 많이 안긴다. 덩치는 이제 비슷해서 친구 먹게 생겨놓고는 "엄마~ 엄마~"하면서 안긴다. 원래 그렇게 살갑게 대하는 스타일이냐 물으면 아니올시다다. 겨우 유치원생 일 때도 엄마 손도 잘 안 잡고 안아주려고 하면 도망가는 아이였다. 태생이 시크한 녀석이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우리 집에서 제일 다정한 남자다. 이노무시키 그렇게 말 안 듣고 속 썩이더니 어머니가 자기를 위해 고생했다는 걸 이제야 느끼나보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수시로 세뇌를 시킨다. 자기 스스로를 잘 키워야지 남의 집 귀한 딸 고생 안 시킨다고 말이다. (시선은 남편을 향하면서 말한다.)




양팔에 아들이 한 명씩 붙어 두 명을 같이 품는다. 첫째는 "엄마~~ 엄마~~"가 최선인데 둘째는 역시 막내다. "엄마~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 품이 제일 편해."라고 말한다. 둘째는 날 때부터 사랑이다. 인간은 자기 자리에서 생존할 전략을 어떻게든 알아서 터득한다는 걸 아이들을 낳고서 알게 되었다.


아이들 둘을 안고 있을 때 문득 내 과거 어릴 적 사진이 생각났다. 엄마는 양반다리로 앉아 있고 한쪽 다리 위에는 내가 한쪽 다리 위에는 동생이 앉아 있다. 여자 셋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다. 특별한 장소도 아닌 집.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를 찍어주는 아빠가 그곳에 함께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과 찍은 사진이 많지만 가장 기분 좋아지는 사진은 엄마 아빠에게 안겨있는 사진이다. 


엄마 품속, 아빠 품속.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속. 나를 태어나게 해준 사람들의 품속. 그 품속이 가장 편안한 곳이다. 아이들을 안아주며 부모님의 품을 떠올린다. 그 사랑을 떠올리며 내 안의 사랑으로 아이들을 안아준다.  훗날 이 사랑을 떠올리며 그땐 자신의 아이들을 안아주겠지. 내가 주는 사랑이 오래도록 대물림된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안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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