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밝음 Jun 08. 2024

웰컴 투 어색함

어색한 우리 사이는 소중한 사이가 되어가겠죠.

어릴 때부터 낯가림이 많았다. 낯선 자리, 낯선 사람. 그런 것들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익숙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은 곳에서는 늘 긴장되고 떨렸다. 사람이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그런 어색함이 어찌나 싫은지. 잘 파악되지 않는 것들은 낯섦이란 이름표를 붙이고 나를 위협했다.


어색한 자리에서는 모든 촉수를 세우게 된다. 상대방이나 그곳의 정체가 파악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뇌가 위험 신호를 보낸다.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건지. 그런 반응을 하는 뇌가 답답하지만, 그냥 받아들인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 쾌활하고 사교적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왜 나는 저렇게 호탕하지 못할까', '왜 나는 저렇게 낯선 사람들 속에서 편안하지 못할까'. 불편함을 껴안고서 스스로에게 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낯선 사람들과의 어색한 자리에서는 자동으로 억지웃음을 짓는다. 안 해도 되는 말을 굳이 만들어 해댄다. 몸은 앉아 있지만 마음은 엉덩이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진 감각과 직관을 모두 동원해서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표정을 살피고 감정을 느낀다. 상대가 파악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를 마음 편히 둘 수가 없다. 그것도 낯선 것에 적응하는 나의 방식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에너지도 많이 쓰인다. 집에 오면 탈진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그냥 그런 성격인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아주 천천히, 정말 느리게 친해진다. 특정 기회가 없으면 잘 친해지지 않는다. 표면적인 관계보다 깊이 마음 나누는 관계를 선호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힘들다. 대신 내 주변엔 오래된 인연이 많다. 그래서 감사하다. 살아가면서 꼭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들과도 처음에는 어색함을 공유한 사이다. 어색함을 거쳐야 친해질 수 있다. 친한 사이의 필수 전제조건이 어색함이라면 이제부터 그런 낯섦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여 보아야겠다. 불편이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이다. "나에게 또 소중한 인연이 오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우리의 관계가 그 누구보다 소중한 관계가 될 수도 있으니까. 웰컴 투 어색함.

작가의 이전글 이보게 해결책이란 없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