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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l 17. 2024

결정적 순간

모든 순간이 하이라이트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결혼을 선택하고 맞이한 지금의 인생이 내겐 너무 거대해. 결혼하지 않은 삶은 감히 상상되지 않아. 아이들을 비롯해 지금 내가 가진 그 모든 것을 지워야 하니까 말이야. 결혼이라는 절체절명의 결정 앞에서 누구나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품는 것 같아. 하지만 나를 위해 두려움을 슬그머니 지워내지. 어쩌면 내가 만나지 못한 또 다른 나를 깊이 그렸는지도 몰라. 그동안 살아온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과는 다른 나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결혼만큼 강력한 건 없으니까. 결혼이 삶의 전부는 아니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결혼이란 삶을 통째로 전환시켜버린다는 점이야. 영화에서 중요한 사건이 시작되면서 스토리가 갑자기 극명하게 갈리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들은 결혼하는 게 좋다 안 좋다는 논쟁을 하곤 하지. 그건 매우 쓸데없는 이야깃거리야. 애초에 시작부터 틀린 주제거든. 왜냐하면 결혼은 좋고 나쁨이 없으니까. 그냥 경험일 뿐이니까. 태어난 게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를 논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과 같은 거야. 삶이 경험이듯, 삶 속의 결혼도 그냥 경험일 뿐이야. 세상에 여러 가지 색의 경험이 있다면 결혼은 그 경험의 강도가 빨강에서 찐 파랑으로 급변한다는 점이 있긴 하겠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상상도 못 했던 경험을 하며 살지만, 동시에 이런 건 원했던 게 아닌데 그것까지 껴안아야 하는 거냐며 울부짖지. 행복이란 동전의 앞도 뒤도 아닌 앞과 뒤의 합이며, 동전 그 자체라는 걸 깨닫게 하는 철학적 행위가 바로 결혼이야. 결혼은 나를 파헤치게 하고, 나를 불신하게 하며,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내가 성장을 원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야. 인간은 다양한 것들로 성장을 하겠지만, 내가 결혼이라는 걸 통해서 성장하고 싶었던 무엇이 있었다는 거지.


예전에는 결혼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결정하지 않은 나를 탓하기도 했었어. 돌아보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결혼 같았거든.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 보니 알겠더라. 내가 만약 지금의 내 결혼생활에 만족해한다면 깊이 고민하고 결정을 했든, 아무 생각 없이 결정했든 상관이 있었을까. 하물며 어제 만난 남자와 오늘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내 선택에 의문을 가지거나 후회할 일은 없었겠지. 그래서 나는 나의 결정적 순간을 돕기로 했어. 깊이 고려했든, 그렇지 않았든 과거의 내 결정을 잘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도록 지금의 내가 그렇게 만드는 거지. 매일 매일 '나 결혼 참 잘했다.'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루에 한 가지씩 만드는 거야. 


오늘은 남편이랑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려고 집을 나섰어. 칠렐레팔렐레 몸만 나서는 내 뒤로 조용히 책을 챙기는 신랑이 있었지. 그래서 곧바로 이렇게 말했어.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지."라고 말이야. 우리는 모두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알고 보면 순간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야.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지 모두 결정하고 있잖아. 사실 인생은 이런 지극히 사소한 것들로 그려지는 그림이야. 내 결정에 따라 인생의 색깔과 온도가 변해. 어떤 모습과 향기로 나의 장면을 만들지 결정하는 건 바로 나야. 그러니 매 순간 위대한 결정을 해보는 거야. 나는 오늘도 수많은 순간을 지나쳤지. 아쉬워하지 말자, 우리에겐 내일 또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으니까. 결정적인 순간은 매 순간이야. 지금, 이 순간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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