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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Jul 16. 2024

떠돌이 작가

내 자리가 없어도 쓰는 일은 계속 될 것이다.

장마가 길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학교로 향한다. 학교에 다닐 나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모교도 아닌 학교에 출근하듯 들리고 있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대학교가 하나 있다. 인근에 세 개의 대학이 더 있지만 가장 거리가 가까운 D대학교로 간다.


학교 중앙도서관 1층 다인석 테이블은 나의 새로운 자리다. 열람실은 답답하기도 하고, 노트북 사용이 어려워 밖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방학 기간이라 몇 시간째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재학생이 아닌 일반인도 이름과 연락처만 작성하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으니, 나의 놀이터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고3 때는 수능 공부하느라, 대학생 때는 전공 시험공부하느라 이 학교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었다. 이제는 영원히 도서관에 올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마흔 넘어 또다시 이곳에 앉은 내가 어색하다. 이제는 학업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원래는 매일 동네 카페들을 전전했다.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집중이 안 되니 어느 순간 카페에 습관적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필요하면 언제든 갈 수 있겠지만 선택해서 가는 것과 카페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재정 문제도 한몫했다. 사무실 쉐어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저렴한 투자겠지만, 습관적으로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좋은 소비 습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패턴을 바꾸기로 했다. 기분으로 가던 카페를 가고 싶은 날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정확히 마음을 먹고 나니 카페에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집에서도 집중이 잘 되었다. 텀블러 하나 들고 동네 도서관에 오니 뿌듯함까지 생겼다. 가끔 가게 되는 단골 카페 2층 창가 자리가 애틋해지기도 해서 오히려 좋았다.


새로 생긴 내 자리가 마음에 든다. 시끄럽지 않고 공기도 쾌적하다. 가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나무들이 우거져있으니 보는 내 눈도 맑아진다. 답답하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 널따란 캠퍼스를 산책한다. 도서관 바로 옆에는 학생 식당이 있어서 아주 가끔 학생들 사이에 끼어서 점심을 먹을 때도 있다.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서 놀이하는 기분이다. 공간적 이점과 더불어 젊음의 기운을 받고 집에 돌아온다는 특별한 장점도 있다.


지금은 자리를 전전하며 살지만 나중에는 내 방 하나를 가지고 싶다. 결혼 전처럼 온전히 나의 물건으로 가득 찬 혼자만의 방 말이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물건들에 내어주어야 한다. 거기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지금은 그 어디에도 정해진 내 자리가 없다. 물리적인 자리라는 공간은 그 사람의 존재적 입지까지 내어주는 것이다. '내 자리'는 곧 '내가 있다.'라는 당당한 표식인 것이다.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다는 게 가끔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모든 자리가 내 자리라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정해진 내 자리가 없다는 게 어디든 내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다. 카페도 도서관도 오롯한 나의 자리는 아니지만 내가 허락한다면 그곳은 나의 공간이 된다. 이렇게 떠돌이처럼 만석의 주인이 된다면 나는 만개의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나를 만끽하면서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훗날 진짜 작가가 된다면 이 모든 자리에 영광을 돌릴 것이다. 


"제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제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받아주었던 모든 자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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