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너와 함께.
카페에 가기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방 속에 꼬여 있던 이어폰 줄을 푸는 일이다. 하루도 엉켜 있지 않은 적 없는 이어폰 친구. 손길이 닿아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쉬운 녀석이 아니다. 매번 줄을 풀어야 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줄을 풀다가 이어폰 마개를 잃어버린 적도 많았다. 이 정도 불편이라면 쿨하게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들 쓰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살 법도 한데 여전히 줄 이어폰을 고집 중이다.
"야! 아직도 그걸 쓰냐? 요즘 줄 이어폰은 아줌마, 아저씨들만 써."
친구에게 핀잔을 듣지만 그렇다고 구매 욕구가 생기지는 않는다. 나는 이미 아줌마고 세상 사람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줄 이어폰을 고집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블루투스 이어폰은 따로 충전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배터리를 신경 쓰느니 꼬인 줄을 푸는 게 낫다. 둘째, 귀걸이처럼 따로 굴러다니는 이어폰은 분명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살면서 잃어버린 물건이 수두룩하다. 더군다나 덩치가 코딱지만 한 이어폰은 잃어버릴 것이 뻔하다. 셋째, 음악을 제공해 주는 기계와 들을 수 있게 하는 도구 사이의 단절감이 싫다. 이어폰 줄을 보면 탯줄이 떠오른다. 함께 이어져 있지만 엄연히 독립적인 존재의 거리는 내게 딱 좋은 관계다. 넷째, 전자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굳이 하나라도 더 가까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과 이유로 여전히 줄 이어폰과 함께 동고동락 중이다.
보통 여자들의 가방에는 몇 가지 필수품이 있다. 화장품, 거울, 생리용품과 달콤한 간식까지. 그 이상을 챙겨 다니는 사람도 많다. 내 가방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큰 숄더백이나 토트백을 기피하게 된다. 몸에서 분리되지 않는 작은 크로스백이 제격이다. 가방 크기가 작으니 넣을 물건의 우선순위는 더욱 뾰족해질 수밖에 없다. 보통 휴대전화와 카드가 전부다. 그것과 함께 있는 유일한 물건이 바로 이어폰이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내 마음을 공감해 주는 친구가 되어주는 음악, 기댈 곳 없고 막막할 때 등대가 되어주는 음악, 나조차도 잊고 살았던 순수하고 몽글거리는 마음을 되찾아주는 음악. 음악이 있어 힘내서 걸을 수 있었고,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세상을 차단해 주기도 했고, 가고 싶은 세상 속으로 데려가 주기도 했다. 삶을 동행해 주는 음악과 만나려면 이어폰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물건인 것이다.
꼬여있던 줄을 풀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오늘의 음악인 Aoustic Cafe의 Last Carnival이 흘러나온다. 발걸음은 가볍고 가을바람이 함께 춤춘다. 내가 여기 있지만, '나'는 이곳에 없다. 어느새 음악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