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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밝음 Nov 22. 2024

탕국예찬

여름에 먹는 탕국 세 그릇의 의미


어릴 적, 명절마다 큰댁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다. 여러 가지 전과 튀김이 기름옷을 입은 냄새는 기분 좋고 배부르게 했다. 그저 맛있는 음식 냄새 맡는 역할만 나에게 있을 뿐, 명절의 의미나 어른들의 노고 같은 건 나와 다른 세계에 있었다. 


초등학생 꼬마였던 나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뒤 베란다로 가서 신문지 이불을 덮고 있는 튀김들을 몰래 빼먹었다. 오징어튀김, 새우튀김도 맛있었지만, 단연 최고는 쥐포 튀김이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명절에 다른 튀김은 안 해도 쥐포 튀김은 꼭 만든다. 제사상 받는 영혼 마음은 모르겠고 만드는 사람 취향이 우선이다.


명절 음식 중 맛있는 게 또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탕국이다. 탕국은 제사상에 올리는 탕수국을 말한다. 소고기, 조개, 무, 어묵, 곤약, 두부를 잘게 깍둑썰기해서 퐁당퐁당 집어넣고 다 함께 수영을 시키면 만들어진다.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뽀얀 국물이 우러나 개운하고 감칠맛이 난다. 명절이 아니면 맛볼 수 없었던 국이라 내겐 유독 맛있게 느껴졌다. 여러 재료가 함께 어우러진 탕국처럼 많은 가족이 함께 모여 먹던 음식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세 번의 탕국을 끓였다. 

7월엔 엄마 제사, 8월엔 아빠 제사, 9월엔 추석. 


명절이라고 맛있는 튀김과 탕국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던 삼십 년 전의 그 꼬맹이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훗날 이렇게 많은 탕국을 자주 끓여야 할 줄 말이다. 그래도 싫어하는 음식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셀프 위안을 삼아본다. 


더운 여름이 오고 탕국을 만나는 날이 되면 자연스럽게 오래전 내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내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가족도 존재할 수 있다. 가족의 소중함은 따질 만큼 따져도 하염없다. 지지고 볶고 사는 일상이 지겨울 때도 많지만 영원한 건 없으니 소중해진다. 다 함께 앉아 탕국을 나눠 먹는 이토록 평범한 명절 일상이 훗날엔 간절한 순간이 될 것임을 알기에 의무보다는 정성으로 뽀얀 국물을 우려본다. 가족들에 대한 나의 마음을 우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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