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밝음 May 01. 2024

'ㅂㅅ'으로 글쓰기

재미있는 초성 글쓰기

글쓰기 모임에서 "ㅂㅅ"이라는 초성 글감을 받았다.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내가 주입식 교육의 전형적인 인간 유형이라는 것을 먼저 느꼈다. 정해진 과업을 하는 게 편한데 머리를 한 차례 더 굴려야 한다는 사실에 난감함이 몰려왔다. 기존에 머릿속에 있던 단어마저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자유를 주어도 누리지 못하는 종속된 인간이여.' 

나에게 안타까움을 전하며 당장 뇌를 굴려보라 명했다.




부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 대해서 적어보자. 그런데 막상 부산을 떠올리고 보니 내가 부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부산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부산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부산을 안다는 건 뭘까? 바다? 사투리? 깡깡이 아줌마? 글쎄다. 부산 안에는 무수히 많은 지역과 역사가 있다. 

나는 부산을 사랑하지만, 부산을 설명할 만큼 아는 게 없었다. 순간 부끄러워졌다. 부산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부산에 몸담고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다른 곳이 아니라 부산부터 꼼꼼히 여행 다니며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이 글감에 낙찰되지 못하고 다시 머리를 굴렸다. 보석이 떠올랐다. 너무 생뚱맞은 단어가 생각나서 놀랐다. 나랑 정말 인연 없는 단어인데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이십 대 때 친구들은 월급 타면 예쁜 액세서리부터 사기 바빴다. 나는 그런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결혼할 때도 예물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목에, 손목에, 손가락에, 온몸 마디마디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해 보였다. 오히려 그 사람의 온전한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관심 없던 보석에 갑자기 관심이 생겼나 왜 그 단어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마흔을 넘어가면서 보석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늘 원석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생각도 바뀌나 보다. 아무리 좋은 원석도 깎고 다듬는 시간을 거쳐야만 보석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모두 다 원석일 텐데 나를 보석으로 만드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젠 그대로 두지 않고 내가 원하는 보석으로 이리저리 세공하면서 만들어가려고 한다. (실제로 돈 많이 벌어서 좋은 보석도 하나 갖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고백한다.)




보석도 글감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 다시 생각해 봤다. 보시가 떠올랐다. 맙소사. 이래서 익숙한 게 무섭다. 하고 많은 단어 중에 보시라니. "ㅂㅅ"을 보고 보시를 떠올릴 사람이 대체 몇 명이냐 되겠냐고. 보시란 베푸는 일을 말한다. 자비의 마음을 실천하는 행위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보시를 잘못 배운 것 같다. 


나에게 보시는 그냥 보시금이다. 절에 가자마자 법당에 가서 절을 하면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보시함. 부처님 보다 보시함이 크게 보였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매일 거기에 돈을 넣고 절을 했다. 다 같이 줄 서서 하는데 나만 넣지 못할 때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도 보시를 강요하지 않는데도 그랬다. 절에 다닐 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도 맞지만 돌아보면 나에게는 남에게 베풀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뭔가 당연한 수순처럼 해야 하는 보시가 싫었던 것 같다. 내가 진짜 마음 나는 곳에, 진심으로 마음이 날 때 자연스럽게 베푸는 게 보시일 테니까. 아무튼 보시를 잘못 배워서 보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거부반응이 난다. 




결국 무한히 열려있는 단어선택의 자유는 누리지 못하고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내 안에 목소리가 들렸다.

"보소, 제발 대강 사소."



ps. 'ㅂㅅ'이라는 초성으로 글쓰기 동아리 멤버들은 정말 다양한 단어를 떠올렸다. 

박스, 복서, 박수, 비수, 발설, 봉쇄, 보상, 변신, 부속, 복선, 본심, 변수

같은 초성으로도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단어를 떠올렸다니 신기했다. 

작가의 이전글 영원한 육아 초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