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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 May 14. 2020

시는 너무 어려워

『나를 뺀 세상의 전부』를 읽고

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너무 짧다... 조금만 더 설명해주지...


공감이 갈 듯 말 듯, 이해가 갈 듯 말 듯한 그들의 언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알아차리기 힘든 때가 많다. 시는 자유로운 것이며, 해석과 향유 또한 자유롭다지만, 교과서에 밑줄이나 쫙쫙 쳐가며 화자의 상황과 시적 허용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를 접해온 나로서는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구나 하는 순간이 많다.


시인이 쓴 산문집을 읽어보라는 말이 내게는 알쏭달쏭했다. 시와 수필과 소설, 사실 내게는 그저 모두 글자들로 이루어진 글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시를 쓰는 사람이 쓴 산문이라 과연 무엇이 다를까 했지만, 오히려 시를 읽을 때보다 시에 대해 흥미를 갖게 해주는 책이 되었다.


말로 쉬이 설명해낼 수 없던 감정들을 단어와 단어로 연결해서 표현하는 작가의 표현방식이 경이로웠다. 작은 사물에 큰 기억을 연상시켜내는 능력에 공감이 가는 것을 넘어서서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글들이 수줍고 아름다웠다. 현실성이 없어질만큼 흡수된 나는 종종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어떻게 이런 단어들을 이렇게 연결시킬 수가 있지?


시를 쓴다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어떤 요일'의 화요일의 시집에서 김연지 님은 시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를 읽고 우는 건 내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노트북 뒤에 얼굴을 숨긴 채 코를 훌쩍이고 있을 때, 호수 센세가 말했다.

'이 사람은 이곳에 얼마나 오래 있었겠어요.'
하나의 풍경 속에 오래 있었던 사람, 그곳에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던 사람만이 가능한 위로가 있음을 그때 알게 되었다. (...) 그럴 수만 있다면 아무리 아픈 곳이라도 얼마든지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생각도.

멀리 떠나기 어려운 요즘, 이제는 시가 되는 풍경들보다 시가 되는 마음들을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먼 곳에 가지 않아도 그런 마음은 기민하게 기록할 수 있다.

- 김연지, 화요일의 시집, 『시가 되는 것들』 중에서

그 상황에 최대한 오래 머무를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비로소 기민한 위로와 깊은 공감을 건네줄 수 있다. 이런 머무르는 눈길은 스킵 버튼과 숏폼영상들 사이에서는 영 해내기 어려울 테다.


지키다(p.157)의 에피소드만 해도 그렇다.

여름에 수박을 나일론 노끈에 감싸 손바닥이 아려옴에도 집으로 가져가는 이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해보았으면 그 뒷모습에서 '사랑을 지키다'라는 말을 발견할까. 땡볕 아래 고행으로 무언가를 지켜낸 그들에게 서늘하고 청량한 가을을 선물하고 싶다는 위로를 건네기까지 그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을 것이다.


오랜 머무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때문인지, 제목처럼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들이 있었다. 또, 내가 앞으로 만날 미래의 나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은 글들도 있었다. 그런 에피소드들을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도 남겨놓겠다. 정말이지 시인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나를 뺀 세상의 초록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 졌던 글들

그림책 선물(p.52)_책을 생일선물로 주고받았던 대학 동기 은과 현에게

독거(p.72)_카페에 가지 않고 집에 놀러 간 내게 차를 내어준 은에게

무용한 선물(p.77)_ 선물이 일상에 스며든 회사 동기에게

사람 구경(p.107)_나에게 여행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은 가족들에게

동물 좋아하시나요?(p.137)_늘 리트리버와 치와와의 사진들로 카카오톡 대답을 대신하는 친구 백양에게

생활(p.154)_고향집의 일상을 무용한 것이라 여겼던 나를 반성하며 어머니에게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 졌던 글들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p.55)

그녀의 비결(p.135)

어김없음(p.147)

내가 모르는 것들(p.165)

유리함과 무지함(p.187)

처지를 버린다는 것(p.192)

Restart(p.225)

먹먹하고 막막한 사람에게(p.257)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까불며 놀기(p.190)


(...) 시는 도대체 무엇인가. 시는 도대체 왜 그다지도 어렵고 가파르게 시적이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는가. 발버둥을 칠수록 불모지가 되어가는가. 시가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으로부터도. 시가 좀 더 아무나 즐기고 아무렇게나 쓰이면 좋겠다. 시가 세상의 위엄에 반기를 들었던 것처럼 시의 위엄에도 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시를 쓸 자신은 없지만, 그런 시를 읽고 응원할 자신은 있다.

- 김소연, 까불며 놀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중에서



나를 뺀 세상의 전부, 262p,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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