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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 Jun 12. 2021

붓다가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면

『1984』를 읽고

1984는 유명하다. 책을 읽지 않아도 빅브라더라는 이름과 언어와 미디어를 통해 정부가 사람들을 조작하고 있다는 줄거리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자유의지에 관한 내용일 테고, 우리는 깨어있는 민중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뻔한 내용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책 속 우매한 민중들과 다르게 시스템이 그릇된 것도 알고 있으니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빅브라더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굴복하지 않은 제 3자도 아니고 소설 밖의 인물도 아니었다.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이 곧 나였다.




내 감정은 윈스턴이 오브라이언과 진정한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빅브라더의 시스템은 세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모든 것이 간파당하고, 역으로 파헤쳐졌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일주일은 빅브라더의 잘못이 어디서부터 인지, 어느 부분부터 비판해야 하는 건지 다시 찾아내느라 애를 써야 했다. 1984가 무언가를 지적하고 있고, 이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겠는데 오브라이언이 하는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울 만큼 힘이 있어서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그 이유는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 오브라이언의 대사에서 발견 되었기 때문이다.


1. 실재는 인식에서


붓다는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진리를 찾기 위해 한평생 노력했다. 그 진리란, 잡념과 생각은 물론이고, 내 몸을 포함한 물질, 심지어 감정까지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믿는 모든 것은 사실상 개인의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걸 놀랍도록 이해하고 있는 것이 인물 오브라이언, 이다. 그래서 윈스턴의 우주와 생명이 인식 밖에 실재하며, 역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므로 바뀔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이 가능했다. 붓다는 이 진리를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수행을 위해 사용했다면, 빅브라더는 이를 폭력과 고통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사용했다.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으로 결국 사물에 대한 지배가, 세상에 대한 지배가 가능했다.


"물질을 어떻게 지배합니까? 날씨나 중력의 법칙을 지배할 수 있습니까? 질병과 고통과 죽음을 ...."
"정신을 지배하면 물질도 지배할 수 있어. 실재는 머릿속에 있는 거야. 자네도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 갑자기 모습을 감추거나 공중을 날아다닐 수도 있어. 마음만 먹으면 마룻바닥 위에서 비눗방울처럼 떠오를 수도 있어. 당이 원하지 않으니까 안 할 뿐이지. (...)" p.166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게. 지구의 나이는 우리와 같네. 어떻게 더 오래될 수 있겠나? 인간의 의식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p.167


2. 영원한 실재는 없다


실재가 인식에서 나온다면, 인식의 죽음, 즉 개인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한다. 굳이 죽음을 동원하지 않아도 한 개인의 인식으로는 그 무엇도 영원한 실존이 불가하다. 모든 것은 생겼다가 사라진다는 진리는 집착을 거두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라지지 않게 하는 방법 또한 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인식으로 영역을 넓힌다면 가능하다. 붓다의 가르침이나 다른 타 종교의 신념 또한 이토록 오랜 기간 이어지는 것은 그 진리를 믿고 승계하고 실천하는 집단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집단의 믿음으로 이어져 오는 사상은 개인의 죽음이라는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 사실 또한 빅브라더는 영원한 권력을 위해 사용했다.


"우리는 권력을 믿는 성직자야. 신은 권력 그 자체이지. 홀로 있는 인간, 즉 자유로운 인간은 늘 패배하지. 모든 인간은 죽어야만 할 운명이고, 죽음은 가장 큰 패배니까. 하지만 인간이 완전히 복종할 수 있고, 개인을 벗어나 당에 합류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가 당 자체일 수 있다면 그는 바로 전지전능이며 불멸인 셈이지. (...)" p.165

"(...) 개인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없나? 당은 불사(不死)의 존재일세." p.174


이 두 가지를 이해하면 소설 중간에 윈스턴이 '난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았으므로, 빅브라더에 굴복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줄리아에 대한 생각은 개인의 인식 영역이고, 이 인식은 실재하는 무언가로 이어질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권력의 영속을 위해서는 개인을 집단의 사상에 완벽히 종속시킬 필요가 있으나 빅브라더가 바꾸지 못한 유일한 부분으로 오브라이언은 그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인정했다.


결국 빅브라더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은 고통과 공포, 즉 폭력을 사용해 상대방이 원하지 않음에도 특정한 생각을 주입하려고 강제한 부분 뿐이다. 빅브라더는 공포를 회피하고자 하는 본능, 살고자 하는 본능을 철저하게 이용해 개인의 사고를 지배했다. 붓다도 본능에 대한 욕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집착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그쳤다. 끝없는 수련을 통해 생존의 본능에까지 집착을 벗어버린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가 아니고서야 나는 과연 공포의 101호실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성을 포함한 모든 욕구와 감정이 공포, 증오, 잔인성의 밑에 짓밟히며 사라지는 세계가 올 것이라는 부분에 비동의하고,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글을 다 쓴 지금도 책에서나 현실에서나 찾아내기 어렵다. 정말이지, 붓다가 좋은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1984 미니북1, 250p, 미니북2, 238p,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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