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고
월스트리트 저널, 타임, 등 수많은 사람들의 추천들, 앞뒤로 박혀있는 배지와 찬사..
500쪽이 넘어가는 책이지만 도저히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자극적인 제목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책을 받음과 동시에 맨 처음부터 슬슬 읽어갔지만 정말이지 이 책은 진도가 안 나갔다. 책을 처음 펼친 건 작년 5월인데 거진 완독까지 거진 10개월이 걸린 셈, 그것도 독서모임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읽었다...
한 단원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씩 뿐인가..? 라고 생각될 정도로 반복되는 내용들.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들과 뚝뚝 끊어지는 문장들끼리의 연결.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는 집중력을 어림도 없지! 라며 끊어버리는 많은 번역 오류.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이 책을 추천하는가 생각하면 읽으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이 환경에 관심이 많고, 환경에 대한 특정한 입장이 있으며, 색다른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혹은, 짧게 요약한 아래 문장들을 읽어보고, 쉬이 납득이 가지 않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읽어보면 좋다.
(스포주의)
1)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2) 지구의 허파는 불타고 있지 않다
➔ 아마존은 그대로 지켜야 하는 천연 자연물이 아니며 차라리 개발하는 것이 장기적인 자연림 보호를 불러일으킨다
3) 플라스틱 탓은 이제 그만하자
➔ 플라스틱은 가장 효율적인 발명품으로 수많은 원재료들의 대체재가 되어주며 자연을 지켰다
4) 여섯 번째 멸종은 취소되었다
➔ 위기 멸종 종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공원은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힘들게 만들어 집단 간의 갈등만 불러일으킬 뿐 실질적인 보호 수단이 되지 못한다
5) 저임금 노동이 자연을 구한다
➔ 농업 종사 인구를 제조업 종사 인구로, 농촌 거주자를 도시로 이주시키며 경제가 발전한다면 자연이 보존된다
6)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한다
➔ 석유/천연가스가 고래를 멸종으로부터 지켰으며, 석탄보다 높은 에너지 효율로 자연을 오히려 덜 파괴한다
7) 고기를 먹으면서 환경을 지키는 법
➔ 채식은 탄소 감축에 효과가 미미하며 축산은 사람이 높은 에너지 밀도를 얻는 방식이며 부정해야 할 것이 아니다
8) 지구를 지키는 원자력
➔ 원자력은 석유/천연가스보다 높은 에너지 효율로 자연을 덜 파괴하며,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소는 엄연히 다른 발명품이다
9) 신재생 에너지가 자연을 파괴한다
➔ 태양열/풍력 발전소는 에너지 효율이 월등히 떨어지며 자연을 더욱 파괴한다
10) 환경주의자와 친환경 사업의 겉과 속
➔ 정치인과 기업들의 철저한 이해관계 속 이루어진 환경운동에 대하여
11) 힘 있는 자들이 가장 좋은 해결책에 반대한다
➔ 선진국 시민들은 본인들이 누리는 발전의 결과물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후진국의 발전을 막아야 한다 주장한다
12) 왜 우리는 가짜 환경 신을 숭배하게 되었나
물론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 미시적인 문제들도 수없이 다룬다. 작은 문제들을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하면 단편이 아닌 총체적인 시각으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담으려면 한 문장으로는 부족하긴 하다.
예를 들자면, 저임금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말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아닌, 저임금 노동 기회는 부정적인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룬다.
저임금 노동환경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하지만, 저임금 노동 기회 자체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도시로 인구가 몰리고, 농업의 기술의 발달하여 적은 노동량으로 최대의 농업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소와 닭이 길러지는 비인도적 환경이 이대로 괜찮은가? 에 대해서는 당연히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옳으며, 실제로 해낸 사람들이 존재하고, 만일 환경 개선이 품질 개선으로도 이어진다면 당연히 축산 환경은 자본주의의 원리에 따라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방목형 축산은 공장식 축산보다 나은 것인가? 그건 아니다. 방목형 축산은 에너지원으로 소비되는 축산물들을 만들어 내는데 공장식 축산보다 더 많은 땅과 자연에서 나는 사료를 필요로 한다. 결과적으로는 자연을 더 파괴하는 것이 된다. 자연적인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요약해놓은 이 문장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봐도 결국, 이 책은 마지막 챕터를 읽어야 완성되는 책이다.
앞의 수많은 단원들은 그저 마지막 단원을 위한 빌드업이었을 뿐.
내가 받아들인 결론은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의 패닉과 공포감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에 매몰되지 말고,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더 나은 것을 위해 노력하고 변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만연해 있는 보통의 시각들을, 우리가 흔히 환경과 관련하여 알고 있는 명제들과 다른 방향으로 대부분의 내용이 쓰였다. 그것도 조금 빡세게 쓰였다.
이 책의 내용도 그간의 통념에 반대하는 의견을 펼친 책이지만, 사실 반대하는 의견에 대한 비판 또한 어마 무시하게 많다.
심지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의 착각 이라는 제목의 브런치 글도 보았다.
https://brunch.co.kr/@nokcha123/130
독서모임을 할 때에, 책에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회원이 있어 알게 된 사실이다. 당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작가도 통계를 편향적으로 사용하고 자신의 주장을 위해 근거를 해석한 또 다른 사람임에 불과하므로 주장을 백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 맞다.
결국 독서모임을 할 때, 갑론을박이 한참 펼쳐졌다.
이 책을 완독 하는 데에만 충분히 힘을 다 썼기에 비판과 반대 의견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게 힘에 부치기도 했고, 여기까지 책을 읽은 나 자신한테 우선 칭찬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 책의 내용이 또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밀려드는 공포감도 있었다. 결국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쟁은 끝날 줄을 몰랐다.
이제 더는 과학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과학 자체의 문제보다는 이걸 해석하고 전달하는 인간들 중 과연 그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라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환경의 주장과 근거들에 대한 갑론을박이 결론이 나지 않는다 해서 헛된 것일까? 설령 어떤 의견의 옳고 그름이 완벽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잠시라도 귀를 기울이면 안 되는 것일까?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므로, 때로는 각색과 단순화를 통해 문제를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뇌가 권선징악의 구조처럼 단순화된 정보를 가장 쉬이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감정이 들어간 스토리는 빠른 이해와 이입을 불러일으키므로, 현재와 같이 이분법적인 모습을 쉽게 학습한 것이다. 자연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파괴하는 못된 종으로 선악을 구분 짓는, 이보다 받아들이기 쉬운 프레임은 없다.
이는 받아들이는 이 외에 전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는 과정들은 곧 해석이 필요하고 응용할 분야로 이어진다. 그 전달은 주로 유튜브 영상으로, 기사로, 책으로 옮겨진다. 그 과정에서 논문의 과학적 사실을 그대로 옮기겠다 해도, 해석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또 받아들이는 이들의 이해와 흥미 유발을 위해 사실의 파편을 여기저기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책 또한 중도의 시각을 지지한다 하면서도, 책 내내 자신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극단에 몰아넣고, 공격하고, 반대 의견(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들은 잘못되었다) 펼친다. 책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이렇게 이분법적인 구조여야 과학자가 아닌 우리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라 그런지 모른다. 이마저도 기초 단계에 해당하는 지식(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들)을 습득한 후라서 이해가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달하는 이와 받아들이는 이 모두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세상의 모든 일을 완벽히 알고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잘 모르는 게 당연하고, 때로는 잘못된 주장을 오랫동안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으니 아무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허무주의적 관점만 아니면 된다. 인간 각자는 최선을 다해 현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고 대중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명의 과학자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믿을 필요도 없으며, 아무것도 믿지 않을 필요도 없다. 갑론을박이 끊이지를 않는다고, 명확한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통탄할 일이 아니다.
환경 문제를 잘 모른다고 자책 말자. 또 하나의 의견에 매몰되지 말고 잘 안다고 자만하지도 말자. 천천히 하나씩, 설령 단편적인 구조에서 시작되더라도 다양한 이의 의견을 들으며 본인의 식견을 수정하고 넓혀나가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작가가 말하듯, 이 세상의 문제들은 흑백으로 나뉜 것이 아니며, 옳은 자와 틀린 자로 나뉜 것이 아니므로 보다 깊은 고민과 관심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이제 환경에 대한 지식이 플러스된 만큼 앞으로 다가오는 정보들을 더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는다 해서 나쁜 정책, 단순히 눈앞의 자연을 보존한다 해서 좋은 행동으로 함부로 판단 내리는 일만큼은 없다.
이 책으로 인해 환경문제가, 더 크게는 과학으로 인한 의사결정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해 봤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이런 갑론을박을 진행하는 목적을 다시금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과학으로 현상을 증명하고, 증명된 것들을 해석하고, 그것에 기반해 앞으로의 행동을 정해야 하는가? 왜?
마지막에 던져지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무엇보다 난 믿고 싶다.
변화는 새로운 위기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다. 새로운 도전과 직면하기 위해서는 패닉이 아닌 정반대 감정이 필요하다. 타인에 대한 돌봄, 침착함, 그리고 감히 말하자면 사랑이다. (...) 그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모든 이들을 위한 초월적인 도덕적 목적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환경 종말론자들마저 속으로는 믿고 있는, "모두를 위한 자연과 번영" 이라는 가치 말이다. p.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