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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 Apr 16. 2020

독후감은 10년만이라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이 많은 것은 우연히 얻은 축복이다. 나의 관심에 따라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SNS의 혜택으로 나는, 몇몇 작가님들을 어깨너머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작가님들의 책을 선뜻 사서 읽지는 못한다.


알라딘 중고 책방에 가서는 표지와 소개글만 읽고 책을 고르기도 하는데, 왜 유명하다는 그 사람의 대표작은 선뜻 집지 못하는 걸까? 처음 만난 사이인 두 사람이 오히려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듯이, 나는 이미 일상을 엿봐버린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을 망설여한다. 이 사람이 쓴 글에 실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으로.




"이슬아, 라는 작가님이 계셔. 너도 아마 들어봤을 거야."

"누구야?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엥? 이슬아를 모른다고?"


신나서 SNS 계정을 찾아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일간 연재의 역사를 친구에게 들려주고 나서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 이 작가님 책 읽은 적 없지.


몇 주 뒤, 그 친구의 집에서 작가님의 책 '일간 이슬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다. 쏟아지는 친구의 극찬에, 그리고 책을 바로 구매할 수 있었던 나와 다른 행동력에, 책을 빌렸고 행여 망가질까 집으로 고이 모셔왔다.


그렇게 약 2주간 매일같이 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이불속에 들어가 ‘일간 이슬아’를 읽었다. 책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가 없었던 것이 빠른 귀가 후 일간 이슬아 읽기를 갈망하는 데 한몫한 것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더 이상 외롭지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마치 동네언니가 들려주는 듯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무어라 대답해야 하지, 하는 고민 없이 즐길 수 있어 좋았고, 책을 빌려준 영은이도 이 무해한 수다에 참여하고 있다는 상상에 외롭지 않았다. 약 30여 명의 친구들과 같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낼 때와, 같은 영화를 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랑은 전혀 다른 느낌의 소통이었다.


차마 책에 표시는 못하고 에피소드 제목 옮겨적기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를 형광펜으로 꼭꼭 칠해놓은 친구의 흔적을 따라, 나도 엽서에 내가 마음에 드는 에피소드를 꾹꾹 눌러 작성했다. 이 에피소드가 무엇을 나에게 연상시켰는지 어서 말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했다. 작가님의 글을 조금씩 아껴 읽고 싶은 마음과 빨리 다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내내 공존해 페이지를 앞뒤로 많이도 넘겼다.


친구를 다시 만나 책을 돌려주었다. 우리는 이슬아 작가님의 대단한 점들에 대해 칭찬하고 흠모하다가 다른 작가의 이야기로 넘어가 또 칭찬하고 흠모하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화려한 이력과 안정적이게 자리 잡은 건강한 습관들이 부럽기만 했다.



 

작가님은 연재와 글쓰기 수업으로 생계를 이어가시다가, 현재는 출판사 사장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이번 달 일간 이슬아, 봄월호의 성공으로 더 이상 월세 걱정은 안 하시리라. 인스타를 보면 화려한 그녀의 팔로워 수와 좋아요 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명의 사람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만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직접 책으로 무엇인가를 해내 보려 하니 느껴졌다. 작가님의 현재 화려한 모습이 절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간 이슬아 첫 호를 읽으면서도 알게 되었다. 마지막 장에는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작가님의 필체에 앞부분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연재하던 것인지, 꾸준한 탈고와 연재가 얼마나 큰 노력이 들어가는 것인지를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약 3년 전, 일간 이슬아를 시작했으니 영은이와 나도 앞으로 딱 3년만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 보람찬 꾸준함 하나는 일궈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2018), 572p, 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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