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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ple Dec 10. 2022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의 습작

3. 흔들리는 감정 저울

후두두둑. 창문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엥? 오늘 비 예보 없었는데?’

날씨 앱을 확인한다. 언제 바뀌었는지 예정에 없던 소나기다. 간만의 약속에 빗줄기가 반가울 리 없다.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게 날씨 탓 같았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다 책상 위에 있는 감정 카드에 눈길이 갔다. 50장의 감정 카드를 책상 위에 쭉 펼쳐 놓고 내 감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당황한, 짜증스러운, 피곤한, 귀찮은… 부정적인 감정단어들이 연달아 눈에 들어온다. 역시나 잠시 숨 고르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비가 온다고 이럴 일인가 싶었지만 감정 저울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럭저럭 내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었다. 아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사람들이 내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렇게 감출 수 있는 감정들은 애써 감추며 성격 좋은 사람, 항상 웃는 사람, 나름 나쁘지 않은 이미지로 잘살고 있었다. 아이와도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육아라는 게 TF처럼 정해진 기한이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24시간 밀착된 관계 속에서 내 에너지를 지혜롭게 분배했어야 했다. 육아에 대한 열정을 체력이 따라주지 못했고, 체력이 방전되면서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감정을 누를 줄만 알았지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내게 감정표현의 수위 조절은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작은 자극에도 크게 폭발했고, 아이에게 들키는 횟수, 솔직히 아이에게 향하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그리고는 미안함과 수치심, 죄책감과 자책에 시달리다 이내 다시 폭발하는, 악순환이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렇게는 나에게도, 가족 누구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나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감추기보다 잘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몇 주의 주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회복탄력성 강의를 들었다. 감정이 우리의 에너지에 미치는 영향, 감정조절의 중요성, 감정을 알아차리는 방법, 그리고 에너지를 관리하는 방법 등 내가 갈구하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당장 감정 카드를 주문하고, 매일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때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만나 불편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찬찬히 감정을 받아들이는 작업을 했다. 마치 아이에게 하듯 ‘아~ 정성스럽게 만든 이유식을 아이가 잘 먹지 않아 속상했구나! 다시 만든 이유식도 먹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구나. 아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구나.’ 그리고는 내가 갖고 싶은 긍정 감정단어를 찾는다. ‘행복해지고 싶어. 아이가 사랑스러워. 아이가 건강해서 감사해.’ 이렇게 누군가와 이야기하듯 혼자서 감정을 다독이고 나면 슬며시 평온이 찾아왔다. 마치 흔들리던 감정 저울이 균형을 잡는 것 같았다.

감정카드를 찬찬히 바라보자니 얼마 전 비 오던 날, 경미한 차 사고로 빗길 운전이 불안함을 알아차렸다. 몇 차례 깊은 심호흡으로 감정을 보듬는 사이 감정 저울이 흔들흔들 중심을 잡고 있었다. 창밖엔 서서히 빗줄기가 잦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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